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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Sep 01. 2019

절(切) - 나에게 손을 내밀다

따뜻한 손길이 닿는 순간


한의학의 네 가지 진단 방법인 망문문절 사진(四診) 중에서 절(切) 진은 의사의 손으로 환자의 몸을 접촉하여 진찰하는 것으로, 촉진(觸診)이라고도 부릅니다. 보고 듣고 물어서 환자분의 몸상태를 파악한 후에,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맥을 짚고 복부를 눌러보아 심도 있게 진찰합니다. 네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덜 중요한 것이 없지만, 절진은 손이 닿기 때문에 그 손길 자체가 치료적 접촉의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위 개념을 나와 관계를 맺는 것에 적용하면,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귀 기울이고 질문을 하고 대화를 했는데도 여전히 나에게 가까이 다가서기에 뭔가 부족함이 있을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적극적으로 관계 회복을 꾀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단점만 보인다면 이렇게 해보자


나를 인정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에게 자꾸 여러 프레임을 씌우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에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기법 중 하나로 이정 변기(移精變氣) 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정신을 바꿔서 기를 변화시키는’ 치료법인데, 간단히 말해 자신의 질병 즉 아픈 상태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환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서, 고통을 잊거나 덜 느끼도록 해주는 방법입니다. 오로지 나에게 꽂혀 있는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것이지요. 현대의 심리치료에서 활용하는 음악치료, 미술치료가 이와 비슷한 범주에 속합니다.


나에게 정신을 지나치게 쏟으면 나를 편견 없이 보기 힘들어집니다. 온종일 자신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끊임없이 거울을 보며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오히려 나에게 무심해져야 합니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서 풍경을 바라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무언가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면, 스스로 덕지덕지 붙여 놓은 라벨을 떼어내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의 부족한 점들 때문에 내가 마음에 안 들고, 생각이 자꾸 부정적으로 갈 때는 나에 대한 ‘인지왜곡’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인지왜곡은 상황을 나 자신과 연결시키는 지점에서 왜곡이 들어가는 현상입니다.


“이것도 못해? 나는 바보가 분명해.”

“이번 프로젝트 실패의 원인은 나야. 다른 사람이 했으면 성공했을 거야.”

“사람들이 나를 보고 왜 미소 짓지 않지? 내가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나에게 주의를 필요 이상으로 집중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인데,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오류에 빠져 있다는 걸 인식하고 인지왜곡을 합리적으로 반박하면 됩니다.


“내가 정말 바보라면 이런 작업은 하지 못해. 그런데 나는 할 수 있으니 바보가 아니야.”

“이번 프로젝트는 준비기간도 너무 짧았고 성공 가능성이 낮았어. 누가 했어도 어려웠을 거야.”


반박을 잘했는지는 기분이 어떤지를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졌다면 제대로 반박을 한 것입니다.




정체성은 붙이기 나름이다


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직접 설정해 줌으로써 나에게 치료적 접촉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향한 애정과 나의 바람을 담아 나를 정의해 보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ㅇㅇㅇ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기보다는, “나는 ㅇㅇㅇ한 사람이다” "나는 ㅇㅇㅇ이다" 라고 현재형 문장으로 선언하는 게 좋습니다. 말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덴티티는 불변의 것이 아니고 나중에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내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설정한 저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윤소정 작가님의 책 <인문학 습관>에 나온 '배우기 위해 존재하는 자는 고통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라는 구절에 감명받고 나서, 배우는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장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배움 모드를 켜놓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좋은 점은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에도, 교훈 한 조각은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많이 쓰게 돼서 간혹 피곤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스위치를 끄고 충분히 쉬면 됩니다.




자신감이 필요할 땐 '해냈다' 처방을


나에게 상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을 준다고 하면 보통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갖고 싶은 물건을 구입하거나 호텔에서 하루 푹 쉬는 것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 또한 정신건강에 좋은 약임에 틀림없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상은 조금 다릅니다. 바로 '소박하지만 자주 경험하는 성취감'입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면 괜히 자신감이 생깁니다. 설령 그것이 우연이라 해도 말이죠. 지하철이 완벽한 타이밍에 도착하고, 신호등이 때맞춰 파란불로 바뀌고. 그럴 땐 마치 세상이 나를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환경을 나에게 유리하게 세팅하면 내 마음상태를 조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영 선수들이 출발대에 올라서기 전에 헤드폰을 쓰고 오직 노래에 집중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텐션을 끌어올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경험이 자신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또 있습니다. 신병 훈련소에 입소하면 첫날에 실과 바늘을 나눠 줍니다. 그리고 각자 지급받은 전투복에 자기 이름표를 바느질해서 달도록 합니다. 재봉틀로 박으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수고롭게 훈련병에게 일일이 손으로 달라고 시킬까요?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진 않지만, 그 이유는 갓 입소한 혈기왕성한 훈련병들의 자신감을 조금 낮추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바느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고 에고가 강한 사람도 첫날부터 '내가 잘 해내지 못하는' 바느질이라는 과제와 씨름하다 보면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이후에 진행되는 훈련을 순순히 받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말이죠.



요즘 저는 To do list(할 일 목록)를 공유하며 실천의지를 높이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는 각자 다음날 할 일 몇 가지를 정하고 그 목록을 모두에게 공유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밤이 되면 그 날 하기로 했던 일을 얼마나 완수했는지 또 공유합니다.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숙제검사를 하는 사람도 없고 벌칙 같은 것도 없지만, '공언하기'의 효과 덕분인지 실천력에 도움이 됩니다. 할 일을 모두 클리어한 날은 뿌듯함이 밀려오고, 절반도 완료하지 못하는 날에는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할 일 목록을 내가 정한다는 사실입니다. 환경설정의 권한이 나에게 있는 거죠. 그래서 조금 욕심이 날 때는 할 일 목록을 타이트하게 정하고, 자신감이 필요할 때는 완수할 가능성이 높은 목록 위주로 세팅합니다. 다음날 V 표시로 가득 찬 리스트를 마주하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막막할 때, 작아질 때,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을 때. 그럴 땐 뭐라도 성취하는 경험을 자신에게 만들어주기를 권합니다. 소박하지만 소중합니다. 무엇을 해냈는지보다, 해냈다는 느낌 자체가 더 절실한 때가 있으니까요.



<자존감 수업>에는 '뇌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행동'이라고 해서, 자신감을 북돋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실천 지침이 나와 있습니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소개합니다.


1)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결정을 믿는 사람처럼 걸어라. 여유 있는 사람처럼, 타인의 비난에 별로 개의치 않는 사람처럼 발을 내딛어라.


2)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지금 어떤 표정을 지을까' 떠올리고 그대로 하자. 평범한 기분이라면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살다 보면 애인과 이별하는 날도 있고, 가족이 아픈 날도 있다. 그런 날이라 해도 거울 속의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라. 그 표정을 지어라.


3) 힘든 일을 겪을 때, 자존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면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해 혼잣말을 하자. "괜찮아, 누구나 이런 일은 겪어"라고 일반화하거나, "나니까 이 정도로 막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정말 큰 사고를 쳤을 거야"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뇌에 들려주라. 뇌는 그런 말을 좋아한다.




이번 글에서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다독여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 자신과 잘 지낸다는 건 결국 자신의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날 아껴주길 바랍니다.

"Do 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우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Do to yourself as you would be done by."라고 바꿔보고 싶습니다. 내가 남들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나부터 나를 그렇게 대접해야 합니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나와 잘 지내는 시작이자 끝입니다.



"그대는 본래 부처다. 과거에도 부처였으며, 지금도 부처고 앞으로도 부처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대 자신이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대가 부처가 아닌 체 행동한다면, 누구도 그대를 부처이게 할 수 없다."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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