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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Aug 25. 2019

문(問) - 나에게 묻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삶의 지도


언제든 호출할 수 있는 대화 상대


나를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은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입니다. 여행으로 치면 여행지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어디인지, 맛있는 음식은 뭐가 있는지,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등등.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가 어느 정도 쌓였다면 지도가 대략 그려진 상태일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대화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상호작용, 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대화는 친구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방식으로 시작해 봅니다. 수집한 여행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여행동선을 짜는 것처럼, 삶을 어떻게 항해할 것인지 방향타를 맞추고 세부사항을 정하는 겁니다.


대화는 무궁무진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내 삶을 주제로 진행되는 대화이고, 둘째는 질문의 정답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와 대화하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나 자신과의 일치'에 가까워지는 방법 중 하나이며, 내 삶에 대한 장악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수시로 나를 불러내어 회의를 열어봅시다. 여러 가지 안건으로.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대화의 한 방편으로, 하루 10분의 시간을 마련하여 사색하는 습관을 들여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차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10분을 확보하는 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시간에는 기존에 내가 정한 원칙에 비추어 보아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은 잘 관리하고 있는지, 요즘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힘들게 하는 것은 뭔지.


생체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그리고 호르몬을 통해 생명활동이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늘 밸런스를 맞춥니다. 우리 마음도 이렇게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밸런스를 맞추는 시간을 가지면 바짝 감겨 있던 태엽이 조금 풀어지며 이완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처리할 일들이 보이고, 해결방법이 보이기도 합니다.


축구 경기에서 더위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쿨링 브레이크(cooling break)를 갖듯이, 잠시 식히며 쉬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행복 버튼


삶에 휘둘리거나 끌려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현재 나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삶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답정나(답을 정한다, 내가)’인데요. 삶의 큰 기준과 세부적인 원칙들을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심리적 자유감’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자유감이란 말 그대로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일찍이 미국의 심리학자인 앵거스 캠벨은 “잘 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주는 요인 중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해 온 그 어떤 요소도 자기 인생에 대한 강력한 통제감보다 더 확실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다.” 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자유감에 대한 허용치가 높은 문화권이 있고, 낮은 문화권이 있습니다. 심리적 자유감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를 할 때 타인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심리적 자유감을 펼치기 유리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요?



행복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개인과 집단의 뜻이 정면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핵심적인 차이다. 개인의 뜻대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은 것이다. 가령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구 유럽. 한편 집단이 개인에게 때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문화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행복 부진'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올림픽 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때 흔히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연예인들이 결혼 발표를 할 때도 비슷한 말을 한다. 예쁘게 잘살 테니 지켜봐달라고. 한국 사람이라면 이 전형적인 멘트에 담긴 정서를 전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운동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나를 위해서 운동도 결혼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나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특별히 더 노력이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할 때 보았던 환자분들 가운데서도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특히나 부모자식 사이의 갈등은 삶의 주체성 문제가 관여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늘 걱정되고 부모가 원하는 길을 따라 걸어갔으면 좋겠고, 자식은 그런 부모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여태껏 의존해 왔던 습관이 있어서 선뜻 주체적으로 뭔가를 하기가 어려운 케이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내 생활에서 심리적 자유감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확실한 방법이고, 마음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가자


나에게 질문하고 나로부터 답을 구하고 나와 소통하는 삶의 동의어는 바로 주체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주인이 되는 삶.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숱한 시험을 거치며 했던 정답 찾는 연습, 그리고 취직, 결혼, 성공에 이르는 데에 하나의 길만 존재한다는 믿음.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 답을 정하고 길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는 나를 둘러싼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내적/외적 통제소재로 나뉩니다. 내적 통제 소재를 가진 사람의 위대한 점은, 언제 어디에서든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지, 어떤 원칙을 지키며 살지, 어떤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 될지 여러 질문의 답을 스스로 내려보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주인의식이 생기고 나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 태도가 자리잡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의 처절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데, 인간은 자기 삶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만 삶에 대답할 수 있을 뿐이며,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대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만큼 자기 존재와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잘 표현한 문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의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걸 실감합니다.

하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한 개인의 만족감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결국엔 사회에 더 좋은 파장으로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갖고, 목표와 원칙을 설정하고 내가 스스로 만든 판에서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나 자신과의 일치에 가까워지고,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 않는 단단한 마음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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