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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Aug 18. 2019

문(聞) - 나에게 귀 기울이다

주체적인 삶의 시작


“나란 사람은 또한 잔잔한 연못 같은 사람인 거예요. 그 연못 밑바닥에 어떤 것이 깔려 있는지 알고 싶으면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돼요. 책이라는 이름의 돌, 경험이라는 돌, 음악, 영화, 늘 던져봐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안에서 진흙이 피어올라요. 그 안에 '진짜 나'가 들어 있어요.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어떤 경험을 하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해외여행을 떠나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연못에 돌을 던지세요.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꼼꼼히 체크해보세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제일 행복한지.”


나영석 PD가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그의 말에서 제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제일 행복한지’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나 PD가 얘기한 대로 나 자신을 여러 상황에 내던져 보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는 것은 내 마음의 윤곽을 파악하는 단초가 됩니다. 삶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내게 귀를 활짝 열고 들어야 합니다.


이전 글에서는 바라보고 관찰함으로써 나를 이해하는 법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엔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입니다.





회고: 삶을 외주했던 날들


제가 저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는 시도를 처음으로 한 건 20대 후반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오직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대학교 시절에는 시험 때 고삐를 바짝 조이고 시험이 끝나면 신나게 노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졸업반이 돼서는 한의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국가고시 준비를 했고, 그렇게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저는 시간이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다 보면 언제나 나는 무엇이 되어 있거나 어디엔가로 와 있었고, 그러한 패턴을 계속해오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한마디로 '어떻게든 되겠지'였던 것 같습니다.


나름 열심히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운전수는 내가 아니었다.



앞에 놓여진 경로를 착실히 밟아 가다 보니 어느 시골에 와 있었고, 저는 그곳에서 공중보건의로 3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 예전엔 늘 과제를 부여해 주는 존재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난감했습니다.


아무도 답을 제시해 주지 않았고 질문부터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했던 그 시기에, 처음으로 저는 제 자신을 나침반 삼아서 삶을 항해해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 보기 시작했습니다. 노트에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적어보았고 그 리스트를 바탕으로 여러 일을 계획하곤 했습니다. 당시엔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그때 진득하게 제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내면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시골에서의 생활.  삶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 모두 나의 몫이었다.





맞춤형 행복을 찾는 방법


<자존감 수업>에서는 자존감을 자기 안전감, 자기 조절감, 자기 효능감으로 분류합니다. 그중에서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합니다. 자기 조절감이 충족되어야 자존감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겨버린 채 사는 사람은 겉보기에 아무리 번듯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책에서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학군에서 공부하고 명문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시골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자란 사람보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백번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내 목소리를 듣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나의 언어로 정의함으로써 알 수 있는데, “나는 ㅇㅇㅇ을 할 때 행복하다”에서 가운데 들어갈 말을 찾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의를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 합니다. 정의는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일상에서 어떤 활동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를 파악해 가다 보면 ‘리추얼’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에서 리추얼을 언급합니다.

“리추얼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형태상으로는 습관과 리추얼은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습관에는 '의미부여'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반면 리추얼에는 반복되는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된다. '사랑받는다는 느낌', '가슴 설레는 느낌' 등등. 내 아침식사 장면에서는 아내가 따뜻한 빵을 내 앞에 두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맛있게 먹으라고 한다. 이때, 뭔가 가슴 뿌듯한 느낌이 동반되면 그 행동은 '리추얼'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덧붙입니다. 나는 어떤 리추얼을 가지고 있는지 떠올려 본다면, 그 리추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얻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꽤 많은 일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사소할지라도 나에게는 삶을 풍성하게 하는 리추얼인 거죠.



리추얼은 우리를 구원한다. 비록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뿐 아니라 싫어하는 일을 추려보는 작업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나의 호불호를 분명히 이해하면 마음건강을 비교적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죠. 누군가와 잘 지내기 위한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한 후,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하고 싫어하는 것은 덜 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원칙은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한 가지 알아둘 점은, 좋아하는 일을 무조건 많이 하고 싫어하는 일을 무조건 피하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분류할 때, 일차원적인 판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학업이나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지친 마음을 달래려 소모적인 즐거움을 찾게 됩니다. 힘든 현실에서 잠시 피신하기 위해 하는 활동을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군것질로 배를 채우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당장은 즐거울 수 있지만, 그것을 매일 한다면 결코 행복하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보다는 내게 ‘성장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위주로 탐색해 보기를 권합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때 행복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성장의 즐거움이 소모적인 즐거움보다 항상 더 크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여러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나의 마음건강에 유익한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적어보았던 내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참고해서, 연못에 돌을 던져보며 내게 성장의 즐거움을 주는 일을 자유롭게 탐색해 보면 어떨까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묘미라 생각합니다.


큰 틀에서 탐색하고, 나를 즐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안에서 작은 성취를 여러 번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성장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스스로를 북돋아주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를 통해 파악한 내 특성을 바탕으로 인생 지도를 다시 그렸다고 해도, 앞으로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지 모릅니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있습니다. 내 목소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 수도 있고, 더 많은 급여를 주는 일자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요하고 잔잔했던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나를 많이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방식이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닙니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다만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데에 루트가 한 가지만 존재하진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뭔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에 두고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을 때, 마음 건강을 지키며 살기에 유리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김어준 씨의 책 <건투를 빈다>에 나온 문단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모르더라. 하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남한테 그렇게들 해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신을 움직이는 게 뭔지, 그 대가로 어디까지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 본원적 질문은 건너뛰고 그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만 끊임없이 묻는다. 오히려 자신이 자신에게 이방인인 게다.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시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쉽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길은 당신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자기 전투를 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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