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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Aug 11. 2019

망(望) - 나를 들여다보다

순수의 시선으로 관찰하라

인류학에서 사용하는 연구 방법 중에 참여관찰법(participant observa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구하고자 하는 지역 또는 집단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연구자가 집단의 일원이 되어 가까이에서 관찰함으로써 연구 대상의 특성과 행동양식을 밀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0년 전에 방송되었던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기억하실겁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신비로운 장면들은 시청자들을 경탄하게 했는데, 그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원주민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온갖 역경을 다 겪었던 제작진의 스토리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죽음의 위험도 불사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26살이 되던 해인 1960년, 탄자니아로 가서 야생 침팬지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는데요. 수십년 동안 이어간 연구에서 그녀는 침팬지의 육식 습성, 도구 사용, 사회적 관계 등 과학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발견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침팬지 무리 속으로 뛰어든 제인 구달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과 제인 구달의 공통점은 대상에게 진지한 관심을 갖고 접근해서 동질감을 형성하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들은 침팬지나 원시 부족의 삶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가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했던 것은 오직 주의깊은 관찰이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닌, 그저 애정어린 관찰의 시선. 바로 그런 시선이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십 년을 지지고 볶으며 붙어 살아온 나 자신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지금껏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지내온 사람들, 또는 나를 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시선을 나에게 맞추고 찬찬히 바라본다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생김새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 확인합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결정하는 건, 거울 속의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거울 속 내 모습에 투영됩니다.


안으로 창을 내어 찬찬히 살펴보면 비로소 내면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나의 내면은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일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 마음 생김새가 궁금할때 일반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익히 알려진 MBTI, MMPI-2 등의 심리 검사를 받는 것입니다. 각종 심리 검사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나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다만 이러한 검사 결과는 평균치와 비교해서 내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형태이기에 나를 알아가는 데에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이 결과를 갖고 무언가를 실천하려면 한 단계를 더 건너야 합니다.



내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나를 관찰한 결과를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의 답으로 나타낸다면 더 깊은 내면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장단점을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번에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보길 권합니다.


'활발하다' , '배려심이 많다' 와 같은 묘사는 나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격상의 장단점 말고, 내가 줄곧 잘해왔던 일들과 어렵게 느껴졌던 일들을 떠올려봅시다.


이 때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좋습니다. 단순히 '글쓰기'라고 적는 것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잘 전달되도록 글을 쓰는 재주'가 더 좋습니다. '축구'보다는 '축구할 때 우리팀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해 정확하기 패스하기'가 좋고, '참을성이 강하다'보다는 '일할 때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늘 같은 모습으로 동료와 고객을 대할 수 있다'가 좋습니다.


내게 어려운 일도 마찬가지로 '말주변이 없다'보다는 '20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려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라 적는 게 좋고, '표정관리를 잘 못한다'보다는 '직장 상사에게 업무 관련해서 지적을 들었을 때 기분 나쁜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가 좋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적으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적은 다음 그 리스트를 들여다 보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나의 면면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부분도 있고 외면하고 싶은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적어보는 작업은 나에게 유리한 행동 전략을 짜는 데에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대개 잘하는 것은 쉽게 인정하는데, 못하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흔히 보이는 패턴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하거나, 못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 좌절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못한다는 사실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못하는 부분을 계속 교정하고 보완하도록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요구받으며 지내왔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나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는 ㅇㅇㅇ을 못해” 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못한다는 게 별일 아니고 고정불변한 사실도 아니며, 훗날엔 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마저 그저 수용하듯이 나 자신에게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갖춰야 할 마인드는 나 자신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려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조건없는 사랑은 나에게도 베풀 수 있다



나의 단점마저도 기꺼이 수용하고 끌어안는 사람을 우리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부릅니다. 자존감은 잘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못난 모습까지도 ‘그래, 그럴 수 있지’하며 인정할 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입니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저서 <건투를 빈다>에서 자존감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결핍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 때의 특별함은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고유함에서 나옵니다. 나의 직업이, 신분이, 외모가, 재산이 나를 특별하게 하지 않습니다. 나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존재의 ‘고유함’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잘한다고 해서 으스대지 않고, 못한다고 해서 위축되지 않습니다. 물론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관계의 기초체력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고 관리해야 합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 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김어준 총수의 말을 한번 더 빌리고자 합니다.


“자신의 상황만이 각별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무르다는 방증이다. 자존감이 든든한 자는 자신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 특별하지 않다는 게 스스로 못나거나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잘나서 특별한 게 아니고, 고유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올바로 볼 수 있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타인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지한 접근으로 나를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나를 존중하는 일이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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