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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Aug 04. 2019

나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

느지막히 배운 '나'사용법



이전 글에서 건강한 관계의 시작은 바로 '나와 잘 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를 제대로 알기'입니다.



북인도 무갈사라이로 가는 밤 기차 안.
나는 앞에 앉은 한 늙은 사두(힌두교의 성직자)에게 많은 것을 질문했다. 그의 이름과 고향과 나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 모든 것이 내게는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 질문에 대답만 할 뿐, 한 번도 나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당신은 나에 대해 알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은 심지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조차 묻지 않는군요."
그러자 그 사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당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소. 난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소. 난 죽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만 하오. 지금까지 난 나 아닌 사람들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 왔소. 당신도 늦기 전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오."



류시화 시인이 인도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지구별 여행자>의 한 구절입니다. 8년 전 이 책을 접했을 때 저는 대학생이었고, 인도 여행을 계획할 즈음이었습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종으로 횡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자라나고 그에 따라 생각도 여물어가던 시기였습니다. 어른이었지만 어른이라 하기엔 애매한 그 시절, 저는 '나'에게 깊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메시지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었는지 모릅니다.


그때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위의 글을 보고 싹을 틔웠던 제 생각은 세월을 지나며 다양한 경험 속에서 담금질되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오면서 실제로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나를 잘 아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나를 잘 알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실리적인 이유입니다. 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들을 합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나름의 판단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옵션을 택합니다. 판단의 근거로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는데 이때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면 근거의 신뢰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결과는 나의 인생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면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삼거나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평균의 종말>을 집필한 사상가 토드 로즈는 그의 저서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평균의 허상을 폭로하고 각자의 개개인성(individuality)에 주목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내가 개개인성의 개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인생에서 번번이 좌절을 겪으며 영문을 몰라 막막해하면서였다. 주위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내가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해 있던 순간에도 나는 이런 평가가 어쩐지 부당하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진정한 나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려고 애써봤지만 아무리 해도 엉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노력은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시스템을 나에게 맞출 방법을 찾아보려 매달렸다.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지 15년 뒤에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의 교수가 됐다.

···

웨버주립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상황 맥락별 기질을 활용해 수업에 임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특정 맥락에서의 내 행동 방식을 파악한 덕분에 대학생으로서나 그 밖의 입장에서나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

내가 인생반전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엔 직관에 따라, 또 그 뒤엔 의식적 결심에 따라 개개인성의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인생에서 번번이 좌절을 겪던 저자는, 자신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자신의 개개인성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꾼 다음부터 여러 방면에서 성취를 이루어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전부 나에게 맞출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하면서 살 수도 없습니다. 단지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느낀다면, 뭔가가 마음처럼 잘 안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내 안에서부터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나부터 내 편이 되자


나를 잘 알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나의 삶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감성적이거나 철학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알아가려는 태도는 내 삶에 대한 예의이고 내 존재에 대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뜻이고 알고 싶다는 것은 사랑의 다른 말입니다. 나를 공부한다는 건 진정으로 나를 위하고 아끼는 행위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윤홍균 씨는 책 <자존감 수업>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자신을 미워한다는 건 누군가 내 등에 업혀서 하루 종일 나를 비난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차 가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몰상식한 언행으로 상처를 또 주는 것을 말합니다. 폭력은 무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고,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기에 손쉽게 돌을 던지게 되는 겁니다.

나 자신이 맘에 안들 때, '나는 왜 이럴까?'라고 속으로 꽂는 한 마디가 나 자신에겐 2차 가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나조차도 나를 함부로 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존감은 나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무장한 사람은 단단합니다. 설령 다른 이와의 관계가 틀어진다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다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탄탄한 면역력을 갖추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잘 지내려는 노력은 누구와도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할 수 있는 면역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의 말을 전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나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전 세계와 불일치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소크라테스도 타인과 더불어 지내기 위해서 우선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세계의 불일치가 발생할 때, 세계의 틀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해결하곤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죠. 불일치를 해소하여 불편함은 사라졌지만 ‘나’의 존재는 뒷전으로 밀립니다. 이 과정이 습관화되면 나와 잘 지내는 길은 멀어지고, 결국 나를 잘 모르는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늘 붙어 다니지만 나도 잘 모르는 나, 그런 나와의 관계 회복은 밖을 향하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면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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