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ient advocate.

by 참울타리

“I will always be a patient advocate.(저는 언제나 환자 편입니다.)”


RRT 간호사(신속대응팀 간호사)의 답장이었다. 좋은 말이다. 실제로 그게 사실이라면.


79세,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만성신부전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할머니였다. 지팡이를 사용하시긴 했지만,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분이셨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6시경 멀쩡한 모습이었던 할머니는 한 시간 반 만에 그녀의 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뇌졸중이었다.


응급실에서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 후 tPA(혈전용해제) 투여가 결정되었고, 약을 투여받았지만 할머니의 의식은 점점 더 나빠졌다. CT에서는 양측 뇌에 큰 출혈이 보였고, 갈 곳 없는 뇌실질은 출혈에 눌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족들은 중환자실팀과 여러 번의 미팅을 통해 할머니의 호스피스행을 결정했다. 호스피스 전문병원 이송을 앞두고 시행한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확인되었고, 호스피스 병원 전원은 취소되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임종돌봄 치료를 받게 되었다.


“환자가 열이 나요. 좌약 타이레놀 오더해 주세요.”


병동 간호사의 호출이었다. 의학적으로 할머니의 열은 코로나 양성이나 그녀의 뇌출혈로 설명할 수 있었다. 차트는 할머니가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환자가 지금 불편감을 보이고 있나요?”


간호사는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신다고 표현했다.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녀의 뇌출혈로 뇌압이 상승했고, 눌린 뇌간 아래에서 의식은 이미 가라앉은 상태였다.


“환자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으면 좌약 타이레놀 투여를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체위를 바꿔 약을 투여하는 것이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대화가 잘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이 불편했던 담당 간호사는 수간호사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고, 수간호사는 나를 호출했다.


“지금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것 같으면 마약성 진통제를 먼저 투여해보고, 그래도 환자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면 그때 타이레놀 투여를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간호사와의 대화도 끝났다. 그래서 나는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격앙된 목소리의 RRT 간호사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할머니가 선생님의 어머니라도 같은 치료를 하시겠습니까? 열이 나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나는 침을 삼키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타이레놀이 환자의 편안함에 도움이 된다면 오더할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마약성 진통제가 충분히 투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먼저 투여하고, 그때도 할머니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시면 타이레놀을 투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RT 간호사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선생님, 지금 거부하시는 거죠? 이거 거부하신다고 문서화하고 간호사 동료들에게 다 말할 거예요.”


몸에서 사리가 생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최대한 감정을 누른 채, RRT 간호사에게 타이레놀 투여를 위해 체위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환자에게 더 큰 불편을 줄 수 있다는 내 입장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를 보러 계단을 올랐다. 평소보다 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환자는 내 지시대로 마약성 진통제를 받았고, 평안해 보였다. 체온도 타이레놀 없이 38도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RRT 간호사를 호출했다.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답이 왔다. “I’m happy to discuss further. I will always be a patient advocate.(더 이야기 나눌 의향이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환자 편입니다.)”


병원 복도에서 그녀를 만나 조곤조곤 상황을 짚어가며 설명했다. 처음에는 팔짱을 낀 채 방어적으로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대화를 마칠 즈음 “I disagree, but we can still work with you professionally.(동의하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팔짱을 풀고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바쁜 오후 회진을 마치고 할머니의 차트를 열어보았다. 나와 만나기 전에 RRT 간호사가 남긴 노트가 보였다. 나를 환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사로 몰아가는 내용이었고, 자신은 타이레놀 투여를 권한다는 분노의 기록이었다.


‘그래도 마무리를 잘 지은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쓴웃음이 났다.


다음 날 회진 때, 할머니 곁에는 따님이 있었다. 따님은 할머니가 간질 발작처럼 몸을 떠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고 이야기하시며, 할머니를 더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의 임종돌봄에는 아티반(신경안정제)과 딜라우디드(마약성 진통제)가 필요 시 사용할 수 있도록 처방되어 있었지만, 마약성 진통제는 24시간 동안 단 네 번 투여된 것이 전부였고 아티반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임종돌봄에 익숙하지 않은 내과 병동에서 벌어진 비극처럼 보였다.


“마약성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는 방식으로 바꾸겠습니다.” 병동 시스템에 할머니의 평안을 맡기기에는 못 미더운 내 결론이었다.


할머니는 편안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동공 반사는 핀처럼 줄어든 상태였다. 뇌간이 눌리며, 곧 임종에 이르기 전에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할머니, 최대한 편안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딜라우디드 지속 주입을 오더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몇 시간 후, 딜라우디드가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다. 따님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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