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힘내세요!

by 참울타리


오늘, 동생으로부터 사진을 한 장 받았다. 가족끼리 불금에 한 장 하는, 익숙한 풍경의 사진이었다. 익숙한 팩사케 위로 동생과 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그 사진을 보다가,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X야, 이게 ‘아빠 힘내세요’라는 술이래.”


어두컴컴한 종로의 한 선술집. 노릇노릇 익어가는 참새구이를 앞에 두고, 친구가 희한하게 생긴 팩사케를 하나 시켰다. 세상에 먹을 고기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참새구이냐고 타박하던 우리를 끌고 종로 뒷골목으로 향할 때, 이미 알아봤어야 했다.


‘이거, 난이도 계속 올라가는데?’


콧수염을 단 중년의 아저씨가 우스꽝스럽게 포즈를 잡고 있는 그 사케. 이름은 ‘간빠레 오또상’이었다. 친구가 들려준 유래는 이랬다. 일본의 한 시대,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 속에서 회사원들이 퇴근 후 편의점에서 사 마시던 싸구려 팩사케. 화려하지도, 맛있지도 않지만, 그 한 모금에 하루를 버텨낼 힘이 담겨 있던 술. 나는 그 팩사케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아빠’의 캐리커처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이 시대를 버텨내는 아빠들의 생명수였는지도 모른다고.


참새구이는 내게 ‘인생 고기’가 아니었고, 그 후로 다시 찾을 이유도 없었다. 대신 친구가 들려준 이 사케의 유래 한 조각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예전처럼 그 친구를 자주 보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아빠가 된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가끔, 오또상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국으로 가 운구를 했다. 그의 관을 드는 순간, 생각보다 가벼웠다. 화장장 문이 닫히고, 유골이 나왔다. 익숙한 듯 절구질을 하는 아저씨의 손에 하얀 가루가 날렸다. 아저씨가 미웠다. 왜 그의 뼈는 그렇게 속절없이 잘 부서졌는지. 화장장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연기가, 오래전 참새구이집의 연기와 겹쳐졌다. 그날의 기억이, 그제야 더 또렷해졌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가끔 오또상이 생각났다.


한국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 횟집이었다. “너 먹고 싶은 거 먹어라.” 선택의 특권은 늘 내 몫이었고, 부모님은 뭘 드셔도 맛있게 드셨다. 그날도 나는 오또상을 주문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 술, 맛있다.”


다사이 23을 가져다 드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던 분이었다. 내가 친구에게 들은 그 이야기를 아버지께 전해 드렸을 때였는지, 아니면 그저 이 술이 아버지의 입맛에 맞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시, 동생이 보내온 카톡 사진을 보았다. 익숙한 팩사케 위로 동생과 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같은 술을, 친구는 이 세상에 없고, 아버지는 저렇게 웃으며 마시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잔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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