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보지 마세요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했던 겨울의 기록

by 참울타리

때가 되면 낙엽이 지고, 색이 바랜 나뭇잎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떨어집니다.

그것은 봄에 다시 피어날 생명을 준비하는 자연의 의식이자,

세대가 바뀌는 순환의 법칙입니다.


인간의 삶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늙고, 누군가는 태어나며,

한 세대는 자연의 품으로 스러져 갑니다.



오늘은 90세의 할머니를 진료했습니다.

손녀에게서 코로나를 옮아 병원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증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움직이실 때마다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최근에 손녀가 다녀갔다가 확진되었는데, 거기서 옮았는지 모르겠어.”

“아마 그럴 것 같아요, 할머니. 혹시 상태가 심해져서 인공호흡기(기관삽관)가 필요하게 되면… 하시겠어요?”


나는 조심스레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담담하게 대답하셨습니다.

“필요하면 해야지…”


하지만 그 대답 속엔,

이해보다 ‘아직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 이제 아흔이야.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어.”


그 한마디에,

자연이 할머니를 부르고 있는지,

아직은 아니라는 신호를 주고 있는지—

나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또 다른 병실에는 70대 멕시코인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불법 체류 신분으로 이 땅에서 일하며

힘겹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심한 호흡부전으로 분당 80회에 가까운 숨을 몰아쉬고 계셨습니다.


“아저씨, 지금은 기관삽관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는 몸이 견디지 못합니다.”

스페인어 통역사가 제 말을 전하자,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괜찮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짧은 손짓 하나가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힘겹게 와이프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였습니다.


“I’m so sorry… but I’m afraid to say that he is not going to make it.”


수화기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회한이, 사랑이, 그리고 이별이 섞인 울음이었습니다.

잠시 후, 통역을 통해 아내의 말이 전해졌습니다.


“선생님은 영웅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아려왔습니다.

이 병은 유독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 불평등이 얼마나 잔혹한지,

그의 숨이 끊어지는 병실 안에서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는 기관삽관 후 엎드린 자세(proning position)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족들의 고통, 그리고 떠나보내야 하는 결심이 얼마나 아픈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곁에 있던 중환자실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이 병동이 생긴 지 두 달 됐어요.

그동안 살아서 나간 코비드 환자는 단 두 명뿐이에요.

그마저도 장기요양병원으로 갔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묘한 절망과 체념이 함께 흘렀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손녀는 아마도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 만남의 대가로,

할머니는 지금 이 잔혹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

의사라 해도, 그 고통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2020년의 겨울은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수많은 눈물로 채워졌습니다.


“사랑한다면, 보지 마세요.”

그 한 문장이

그해 겨울 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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