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짧은 악수 하나가 전한 따뜻함의 기억
병원은 여전히 코로나 전시 상황처럼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상을 채우는 건 코로나 환자만이 아닙니다.
감염 방지를 위해 모든 방문이 엄격히 금지된 탓에,
요즘 제 하루는 환자를 돌보는 일 외에도
전화로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전하는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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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60대 후반의 난소암 환자 한 분이 입원하셨습니다.
복강으로 암이 크게 퍼져 장폐색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셨지만,
종양내과 의사는 더 이상 쓸 약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환자분은 콧줄을 통해
장에 고여 있는 체액을 배출하는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스피스 의사와 상의 끝에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홈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며 마지막을 준비하기로 결정하신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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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병원 오기 전에 토할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 콧줄이 정말 도움이 돼요.
혹시 이걸 단 채로 퇴원할 수 있을까요?”
“보통 호스피스 퇴원 때는 꼭 필요한 라인 외엔 다 제거하는 게 원칙이지만…
제가 한 번 호스피스 회사에 알아볼게요.”
그 콧줄은 코에서 위까지 이어진 긴 관으로,
그 자체로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장폐색이 일으키는 통증과 오심 때문에
그걸 유지하길 원하셨습니다.
사회복지사와 상의하고,
호스피스 회사에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퇴원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사회복지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환자분이 오늘은 퇴원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네요.”
호스피스 결정을 내린 분이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현실은
그분께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오늘은 퇴원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루 더 시간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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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다시 회진을 돌았습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집으로 가시기 전에 제가 도와드릴 게 더 있을까요?”
그런 질문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분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많이 나아요. 고맙습니다,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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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이라면 저는 환자들과 자주 악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순한 행위조차
서로가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할머니가 호스피스로 퇴원하신다 하니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잘 지내세요.”
마스크에 가려진 제 표정이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제 오른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그 손은 놀랍도록 따뜻했습니다.
오랜만에 잡은 사람의 손이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거리두기 속에서
그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서 마음 깊숙이 전해졌습니다.
병실 문을 나서며
나는 알코올로 손을 소독해야 했지만,
그 따뜻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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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느꼈습니다.
이 작은 온기가, 내가 그리워하던 ‘행복’이었다는 걸.
언제쯤 다시 마음 놓고 손을 맞잡고,
타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날의 악수가 할머니에게도
짧지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