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이 더 익숙했던 아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던 소년

by 참울타리

한약이 더 익숙했던 아이


나의 오래된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언제나 한약 냄새가 난다.

큰아버지가 한의사셨기에 우리 집에는 양약보다 한약 소화제가 더 흔했다.

검은 유리병 속 끈적한 약액, 달고 쓴 냄새, 입안 가득 번지던 그 맛.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그 냄새는 내 유년의 가장 오래된 언어였다.

배가 아프면 ‘아선단’을 먹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작은아버지의 병


세상에는 아선단 말고도 약이 많다는 걸 알 무렵, 나는 중학생이었다.

컴퓨터에 빠져 공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출장차 우리 집에 머무르던 작은아버지가 밤새 앓으시더니

병원에서 간담도암 진단을 받으셨다.


우리 집안은 원래 북한 피난민이었다.

숙청을 피해 남하하던 시절, 굶주린 작은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로 허기를 달랬다고 했다.

그 물고기가 간흡충(디스토마)에 감염돼 있었고,

그 기생충이 평생 작은아버지의 간을 괴롭히다

결국 암으로 번졌다고 했다.


늘 건강해 보이던 작은아버지는

평생 마른 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보다 먼저 야위어 갔다.

사지가 붓고, 복수가 차올라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큰아버지의 고백


한의사로 존경받던 큰아버지는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셨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아산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작은아버지는 수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큰아버지는 내 앞에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동생이 통증이 심했는데,

나는 한의사라 진통제조차 제대로 줄 수 없더구나.”


그 말은 한 인간이, 한 형이,

그리고 한 의사가 무너지는 고백 같았다.

그날처럼 큰아버지가 작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우리 큰아버지도 의사지만, 가족이 아플 때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구나.’

그래서 나 스스로 다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 결심이 나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철부지 의대생


세상에서 가장 자신만만한 사람은

의사가 되기 전, 의대에 다니는 학생들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지식과 기술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알지 못했기에

의학을 신앙처럼 믿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수련의로 지내며 배움과 현실을 맞닥뜨리자

그 우쭐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잃어야 했고,

그때마다 ‘의학의 가치’와 ‘인간의 한계’를 다시 배워야 했다.



내과의사로서의 나


만성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내과의사는

어찌 보면 한의사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한때 나는 스스로 큰아버지보다 훨씬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고 믿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킬 수 있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그때의 큰아버지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현대 의학으로도 할 수 없는 일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프고, 또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자기고백


이제는 안다.

그날 큰아버지의 자조 섞인 말은

‘한의사의 무력감’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어가는 한 인간의 절규였음을.


나는 더 이상 한약 냄새를 맡지 않는다.

하지만 그 냄새처럼 오래 남는 사랑과 기억을,

그리운 이들의 온기를 다시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