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한계보다 무서운 건, 익숙함이었다
내가 내과 레지던트 2년차이던 시절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일하는 야간 당직 근무였다.
그날 21세 흑인 겸상적혈구증 환자가 복통을 주소로 응급실에 왔다. 혈액검사에서는 기존의 빈혈 외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통증 때문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곁에는 미성년자인 여동생이 있었다.
“언니가 며칠째 아팠어요. 제산제를 먹어도 안 나아서 데리고 왔어요.” 걱정으로 젖은 눈빛이었다.
그녀의 복부를 검사했다. 통증으로 인해 근육이 완전히 굳어있었다. 이상했다. 단순한 통증이라면 이렇게까지 단단하지 않아야 했다. 왠지 모를 찜찜함이 마음을 스쳤다.
그래서 그녀의 주치의였던 타주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이전에도 이런 복부 강직이 있었나요?” 그 말을 하는 도중이었다.
병원 전체에 코드가 울렸다. 그 21세 환자였다.
중환자실 팀이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복부 X선 결과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터져버린 장. 그 안은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외과에서 긴급 수술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그날 밤 끝내 세상을 떠났다.
겸상적혈구증 클리닉의 진료보조가 “환자는 괜찮습니다.”라고 인계한 말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잘못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주임 레지던트와 모든 담당 교수들에게
이 케이스에 대한 질타를 한몸에 받았다.
한 시간이나 지연된 복부 X선, 병원의 구조적 문제, 클리닉의 판단 오류보다 수술이 필요한 급성 복통을 제대로 구분해내지 못한 내가 대역죄인이었다.
그들의 질타는 괜찮았다. 중환자실 담당 교수가
“소송이 생기면 혈액종양과 교수 쪽이 더 큰 책임을 질 거야.”
라고 말했지만, 그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잘못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수많은 환자를 보지만, 어떤 환자는 가슴에 남는다. 그녀의 어린 여동생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던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 후로 나는 누군가의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