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 글을 쓴다는 것.

by 참울타리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바깥 세상에서 몰아치는 자극과 그에 맞서려는 나 사이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자신만의 무기를 꺼내 든다.

어떤 이는 몸을 갈아 넣듯 운동하고, 또 다른 이는 술과 이성의 열기 속으로 도망친다.

누군가는 글쓰기로 심연을 파고들고, 극단에 몰린 영혼은 결국 마약이라는 벼랑 끝까지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손에 잡히는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어치웠고, 마음을 흔드는 문장은 수십 번씩 곱씹으며 정독했다.

책은 내게 바깥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첫 번째 문이었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믿을 만한 도구였다.


초등학교 때 나는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일기를 썼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쓴 글에는 자기검열이 잔뜩 배어 있었고, 내용은 거의 ‘컴퓨터광’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실험 일지에 가까웠다.


중학생 초반의 나는 공부보다는 컴퓨터 이야기에 더 마음을 빼앗긴 조용한 아이였다.

남들 눈에는 말수가 적고 관심사도 좁아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그 작은 세계가 전부였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직은 협소했지만, 그 속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살아 있었다.


중2 무렵, 처음으로 앞으로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 끝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나는 처음으로 공부라는 세계와 정면으로 맞붙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 마음을 정하자 몰입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 노력은 중3이 되던 해, 내 성적을 반 2등까지 끌어올리는 수직 상승으로 돌아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의지를 불태우면, 나는 꽤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중3 때 올림픽공원 백일장에서 쓴 수필도 지금까지 선명하다.

나무를 손질하던 한 아저씨를 바라보며, 그의 행동이 결국 더 나은 열매를 위한 과정임을 깨달았다.

문득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날 내가 쓴 글은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수필이었다.


그 수필은 내게 교내 백일장 대상이라는 뜻밖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나중에 돌려받은 원고 첫 장에는 처음엔 장려상이라 적어 두었다가, 그 위를 덧그어 대상으로 고쳐 쓴 심사자의 필체가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이 묘하게 마음 한켠을 건드렸다.

결국 나는 나 때문에 장려상을 받은 친구의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 친구의 글은 분명 나보다 훨씬 더 깊고 섬세한 감수성이 깃든 훌륭한 글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어떤 저항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었고, 내 성적이 크게 오른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상을 바꿔 주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받아서는 안 될 상을 받은 것 같은 부끄러움이 오래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 부끄러움은 결국 글을 멈추게 만들었다.

재능으로 그 친구의 깜냥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내 손을 붙잡아 글에서 멀어지게 했다.


여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죽마고우가 던진 말이 기묘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너는… 수필에 강점이 있는 것 같아.”


그 말은 칭찬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마치 너의 글은 여기까지야 하고 한계를 정해주는 말처럼 받아들였다.

문학적 재능이 아닌, 감정의 기록—수필이라는 좁은 틀 속에 나를 가두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래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나를 글에서 멀어지게 했다.


의대에 진학한 뒤 나는 거의 운명처럼 편집실에 들어가 학생 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나는 두드러지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선을 읽고, 거기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좋았다.

반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사를 짜는 기자식 글쓰기는 내게 맞지 않았다.

글을 기술로 다루는 순간, 글이 지닌 진실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의사가 되고, 공보의 시절을 지나, 도미를 준비하던 때까지

나는 틈만 나면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끄적여 왔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감정들이 문장 속에서 형태를 갖추는 순간,

내 안의 혼란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경험이 반복될수록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나는 글을 써야 마음이 숨을 쉰다.

운동이 누군가의 해답이듯, 술이 누군가의 위로이듯,

나에게 글쓰기는 감정을 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코로나 시절을 거치며 나의 글쓰기는 어느새 이민자 마일 커뮤니티 사이트에 잡담처럼 남기는 짧은 글들로 정착했다.

가볍게 쓴 글들이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가볍지 않았다.

댓글 하나, 추천 하나에 사람들이 내 글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움직인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았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영향력이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 깨달음은 과거의 상처와 단절이 만들어낸 금기를 흔들기 시작한,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올해 9월, 나는 세 번째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도전이었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 순간 멈춰 있던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만 저장해 두었던 주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글로 써내려갔다.

쓰지 못했던 시간 동안 쌓여 있던 감정과 생각들이

오래 막혀 있던 관을 뚫고 흘러나오듯 거침없이 흘렀다.


나는 프로 작가의 실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본업이 의사인 글쓰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내 감정을 구조화하고 정리하여 마무리짓는, 일기이면서 동시에 나를 유지시키는 의식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쓴다.

어떤 날은 고독을 해체하기 위해,

어떤 날은 분노를 식히기 위해,

어떤 날은 이해받지 못한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어제,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다는 한 교수님의 댓글을 받았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찾아왔다”는 그 한 줄이

내가 쓰는 이 소박한 글들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일깨워주었다.


어쩌면 나는 의사로 사는 시간보다

글로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더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참 부끄럽다.

그저 내 일기처럼 적어 내려간, 대단치도 않은 글이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옆에는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감정이 있다.

뿌듯함.


글은 사람을 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의사로서 살린 생명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조용한 힘을 안다.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고,

어떤 이의 기억 속에 작은 불씨로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살아 있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아주 작게라도 흔적을 남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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