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삶의 가치를 묻는다면.

한 환자의 마지막 날이 내게 남긴 것들

by 참울타리


“721호 환자 산소포화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67세 한국인 폐암 환자였다.

아저씨는 기운 빠진 얼굴로 큰 산소 마스크를 쓴 채, 아침 첫 인사를 받았다. 통역기 너머의 낯선 목소리를 예상했는지, 한국어를 쓰는 의사가 들어오자 잠시 반가움이 스쳤지만, 기운이 없어 그 마음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닥터 X입니다. 어제도 산소가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어요. 오늘 피검사와 흉부 X-ray를 다시 확인하고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볼게요.”


급박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소개하고 곧바로 치료 계획을 설명해야 할 때면, 마음 한쪽이 늘 무거워진다.


폐암 3기로 첫 항암을 시작한 뒤 심방세동이 생겨 항응고제를 복용 중인 환자였다. 특이하게도 산소포화도만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가슴 사진에서는 폐렴 소견이 오히려 호전되고 있었다. 나는 흡인이나 점액전(뮤커스 플러그)을 의심했다. 네뷸라이저 치료를 시작했고, 기도 속 분비물을 제거하기 위한 여러 처치를 계획했다. 기관지 내시경으로 직접 제거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호흡기내과에도 컨설트를 보냈다.


“산소포화도가 지금은 잘 유지되지 않아서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길게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전임자가 놓쳤던 전혈구검사와 기본대사검사에서는 첫 항암 뒤 전형적인 범혈구감소증이 나타나 있었다.


“수혈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혈색소가 너무 낮아서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어요.”


아저씨와 아내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 중환자실로 전원되었다.


CT 혈관조영에서도 특별한 감염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혈전 또한 없었다. 면역이 크게 떨어진 상황을 고려해 광범위 항생제를 추가했고,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아저씨의 산소 요구량은 오히려 계속 상승했다.

수혈도 하고 항생제도 투여했지만, 수치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쉬프트는 끝났다.

할 수 있는 치료를 모두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나빠지는 환자를 뒤로하고 병동을 나서는 일은 늘 마음 깊은 곳에 찜찜함을 남겼다. 그날도 그랬다.


잠도 쉽게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결국 새벽에 전자차트를 열어보았다. 산소를 최대로 올렸는데도 유지되지 않아 이미 선택적 기관삽관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미리 전원해 두었기에 갑작스러운 심정지 속에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질서 있게 진행된 것이 다행이었다. 새벽 당직이던 동료가 재빠르게 판단하고 중환자실 팀과 협력해 준 덕분이라는 생각에 묵직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며칠 동안 항암 병동의 일에 치여 아저씨의 차트를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했다. 아침 출근길, 새벽 근무를 마친 동료가 복도에서 보였다.


“몇 일 전 그 환자 잘 봐줘서 고마워.”


그 친구는 약간 겸연쩍은 표정으로 밤사이의 경과를 설명하더니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결국 기관삽관까지 하고 중환자실 팀이 맡았는데… 산소 요구량이 계속 올라가서, 결국 돌아가셨어.”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폐암 3기였지만, 나는 그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중환자실팀의 데스 서머리는 단 몇 줄이었다.


6주 동안의 항암 치료에도 폐의 림프성 파종이 계속 진행되었고, 결국 폐 기능을 상실하여 가능한 모든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가족은 치료 중단을 선택했고, 환자는 그날 가족 곁에서 평화롭게 임종하셨다—요약은 그렇게 적혀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병은 너무 빠르게, 너무 잔인하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질문이 떠올랐다.


‘전에 의사가 피검사를 조금만 더 빨리 했더라면?

수혈 같은 치료를 조금 더 과감하게 했더라면?’


현실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환자의 병의 흐름을 잘 읽는다고 자부해 왔다. 이번에도 혼란을 최소화했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그 역시 나의 오만이었는지 모른다.


마음은 끝없이 내려앉았다.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따뜻하게 눈길 한 번, 손 한 번 잡아드릴 걸. 여러 치료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아저씨를 바라볼 여유, 손을 잡아드릴 시간조차 없었다. 내가 했던 모든 일이 헛된 듯 느껴져 멍한 기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데스 서머리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았다.


“가족들 곁에서 평화롭게 임종하셨다.”


거기에는 조용한 깨달음이 있었다.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혼란을 최소화하고 가족이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마련해 주는 일. 그것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의사로서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사실.


그리고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접어두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내 마음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책이 한 권 있다.

의사 생활을 하며 내가 잃어온 환자들의 기억이 차곡이 담긴 책. 누군가 오늘 하루의 가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책을 펼쳐 보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하루가, 그분들이 간절히 바라던 미래였고 소망했던 희망이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더 잘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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