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한 번쯤은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이름을 배운다.
그분이 남긴 글 중 가장 널리 회자되는 문장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침략을 받지 않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는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솔직히, 나라가 겨우 해방되었다면
나 같으면 지금껏 우리를 괴롭혀 온 일본도
한 번쯤은 혼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대로 당하고만 살 순 없다’는 복수심이 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런데 김구 선생은 그 순간에도
정복도, 보복도 아닌
“높은 문화의 힘”을 이야기했다.
예술로 마음을 움직이고
아름다움으로 설득하는 나라.
어린 마음에도 독립운동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생 때 방문한 미국은
한국이 ‘작은 동양의 나라’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긴 줄에서
백인 꼬마가 내게 “어디서 왔어?”라고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 하자
자기 삼촌이 주한미군이라고 했다.
그게 당시 미국에서 한국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하고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 음식까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한국 문화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어 한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하나의 당당한 문화의 흐름이 된 것이다.
2021년, 에스파가 K-팝 그룹 최초로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모습을 드러내고,
2025년 추수감사절 뉴욕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K-pop Demon Hunters의 “Golden” 같은 순간은
그저 한 곡의 무대가 아니었다.
한국 문화가 더 이상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 대중문화의 감정선을 이끄는 위치에 서 있음을
선명하게 증명한 장면이었다.
그날 TV 화면 속,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백인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던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의 힘”의 진짜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보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제가 많다.
좌우로 갈라진 정치, 여유 없는 경제,
버겁다고 느껴지는 하루하루.
이 모든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침략하지 않고서도
세계가 함께 느끼는 문화를 만들었다.
인류의 마음에 남는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그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게 바로 김구 선생이 바랐던
“문화의 힘”이며,
우리 민족의 진짜 저력이다.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어려움을 딛고
이 빛을 더 크게 밝혀 나가리라 믿는다.
백여 년 전 김구 선생이 간절히 꿈꿨던 그 희망을
우리가 드디어 이어가고 있음을,
이번 추수감사절의 한 장면이
조용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