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울타리로 산다는 것

by 참울타리



내 이름 앞에 붙은 작은 필명 하나, ‘참울타리’.

처음에는 내가 가볍게 지은, 그저 인터넷 세상에서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의 삶을 조용히 이끌어온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처음 아이디라는 개념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컴퓨터가 좋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computer and me라는 뜻으로

‘comandme’라는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저 중학생이던 나의 단순한 취향과 관심을 담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초 만에 지은 아이디는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마다 참 곤란해졌다.

아무도 그 안에서 com and me라는 의미를 따로 떼어 이해하지 못했다.

어색한 설명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슬슬 이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모니터 옆에 포개져 있던 책들 사이에서 얇은 잡지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자주 보시던 기독교 잡지, ‘낮은 울타리’.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제목의 뒷부분 ‘울타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따뜻하면서도 단단하고,

경계를 세우면서도 그 안쪽을 지켜주는 이미지.

어쩐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나는… ‘참’ 울타리가 되어볼까.”


‘낮은 울타리’가 타인에 대한 경계를 낮추고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말한다면, 내가 바랐던 울타리는 조금 달랐다.

누군가의 곁을 지키며 실제로 몸을 내어주는 울타리,

위협 앞에서 맨 앞줄을 서 주는 울타리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믿음직한 울타리가 되겠다고 말한다. 가족을 지키겠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겠다고 쉽게 약속한다. 하지만 정작 몸을 던지는 순간에 끝까지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그 간극이 늘 마음에 걸렸다.


지켜주고, 감싸주고, 위협에서 보호하는 울타리라는 말의 본래 의미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점점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흐려져 가는 그 보호의 의미를 붙잡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울타리,

진심으로 지켜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내 이름을 ‘참울타리’로 부르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왜 유독 ‘울타리’라는 단어에 이렇게까지 끌리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단지, 나를 설명해주는 말 같다는 막연한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한참 뒤에야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만난 울타리


오래전, 내가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 지하철역 승강장은 늘 약간의 바람과 쇠 냄새, 그리고 어른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작은 틈을 유독 무서워했다.


그 틈은 내 작은 몸에 비해 너무 넓어 보였다.

검은 바닥 아래로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려갈 것만 같은,

세상과 나 사이의 크레바스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어딘가로 가던 중,

지하철이 들어오고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철제 문이 덜컥 열렸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가던 그 순간,

엄마는 만원인 지하철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셨다.

아마 나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거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지하철 안은 유난히 꽉 차 보였다.

사람들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빈틈은

평소보다 더 넓게, 더 깊게 느껴졌다.


나는 순간 심연보다 더 깊어 보이는 틈을 건너지 못해

문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몇 초가 길게 늘어지는 사이,

지하철 문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서서히 닫혀 가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어린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엄마는 이미 저 문 너머에 있고,

나는 이쪽에 남겨져 버릴 것만 같았다.

브레이크 냄새와 사람들의 숨소리,

닫히는 문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가 겹쳐 들려왔고

곧 나는 버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바로 그때였다.


사람들 팔 사이에서 익숙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닫혀가는 문틈 사이로 그 손이 단단히 끼어 들어가

지하철 문이 완전히 닫히지 못하도록 버티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가녀린 팔이 문에 찍혀 다칠까 봐

순간 더 큰 걱정이 밀려왔다.

그 팔은 아프도록 얇아 보였지만,

그 좁은 문틈을 막고 서 있던 그 순간만큼은

어떤 철문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곧 그 손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어머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잡아끌어

자신 쪽으로 힘껏 당기셨다.

사람들의 몸과 몸 사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간 끝에,

나는 결국 지하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가까스로 엄마 곁에 선 나는

비로소 숨을 크게 한 번 내쉴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울타리는 크기나 모양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내어놓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을.



다시 현재로, 그리고 이름의 의미로


세월이 흐른 뒤, 나는 글을 쓰는 의사가 되었고

브런치에 올릴 여러 글의 주제를 고민하며

어느새 챗지피티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하필 ‘울타리’라는 단어를 골랐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내 삶의 여러 조각들이 서서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환자 곁에 서 있을 때,

마지막을 앞둔 가족에게 말을 건넬 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감싸 안으려 할 때,

가족과 친구들의 곁을 지키고 싶을 때마다

나는 늘 같은 결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사로서 품어온 사명감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기울여 온 나의 태도도

돌이켜보면 모두 그 단어 하나에 담겨 있었다.

내 삶의 주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름 속에서 자라고 있었음을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 이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름이 나를 선택했고

나는 그 결에 맞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가끔 북미에서 내 필명을 울타리 시공 업체로 착각한 고객들이 친절하게 울타리 견적을 물어오는 이메일을 보내와

잠시 당황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해프닝조차

이제는 나와 이 이름 사이의 오랜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소소한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울타리’라는 이름은 단지 내가 붙인 필명이 아니라

내 삶이 스스로 선택한 방향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새벽녘 챗지피티와의 대화 속에서 비로소 이해했다.


그 이름은 내 삶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고,

나는 이제 그 언어로 나 자신을 조금 더 또렷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참울타리’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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