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야. 여기 내가 전에 이야기한 니 초상화!”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정신과 오픈 병동에서,
나의 실습 환자였던 준이 형이 내 초상화를 완성해 주었다.
그의 그림은 놀랄 만큼 나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낸,
손이 좋은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수작이었다.
“형, 고마워요… 참 잘 그렸네.”
본과 3학년의 정신과 실습이었다.
외과나 내과처럼 피와 살이 튀는 다이나믹함과 달리,
정신과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 같았다.
그중에서도 오픈 병동에서 만난 준이 형과의 만남은
그 휴식 같은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형은 조울증 환자였다.
얼마 전 조증 에피소드로 입원한 상태였지만,
기록이 없었다면 그저 사교적이고 쾌활한 사람으로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명문 미대 H대 출신의 작가였다.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증상이 발현했고,
극장에서 속옷을 벗고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형은
약이 잘 들어서인지 유쾌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내어놓았다.
주치의에 대한 감정, 가족들에 대한 연민,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싶어 한때 의대를 고민했다는 이야기까지—
형은 그 특유의 생생한 말투로 자신의 세계를 나에게 건넸다.
형의 습작들을 보며 나는 감탄했다.
범접할 수 없는 스케치 실력,
그리고 성기를 과도하게 해석해 놓은 그림 앞에서 느꼈던 당혹감까지—
그 모든 것이 형이라는 사람의 진폭이었다.
며칠 뒤 정신과 의국장 선배님이 밥을 사주며 조심스레 말했다.
형이 의대를 생각했다는 말도
조증이 주는 전지전능감의 일부일 수 있다고.
그리고 예술가들 중에는
작품을 위해 조증 상태를 일부러 즐기기도 한다며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형의 매력에 마음이 열린 뒤였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우리는
형이 퇴원한 뒤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떤 날은 의미 없는 이메일을,
어떤 날은 이해하기 어려운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증상이 불안정해 보일 때면
연락처를 공유한 내 선택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색하지 않고
조심스레 연락의 빈도를 줄여갔다.
내가 도미를 준비하고 미국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며
형과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조울증이 얼마나 격렬한 파동을 그리는 병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다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찾아오는 감정은
형님이라는 한 인간을 향한 연민과 미안함이었다.
내 꿈을 듣고 진심으로 응원하며
초상화까지 그려준 그의 행동을
모두 조울증의 증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형은 분명, 그 병의 틈새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내게 건네고 있었다.
나는 가끔 한국에 가면
형이 그려준 초상화를 꺼내 본다.
그 옆에 적힌 문장을 읽으며
그때 형이 내게 건네온 마음을 떠올린다.
그 문장은 시간이 지나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었다.
형님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조울증이란 병이
예술가의 혼을 담기엔
인간의 마음이 너무 작은 그릇일 때 생기는
균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고,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일 것이다.
그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는
이 병이 천형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초상화를 받던 날, 햇살 아래에서 느껴졌던
내 두 팔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정신과 환자는 환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형은 내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지금,
환자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날이면
준이 형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다.
자기를 잊지 말라고,
병 때문에 흐려졌을 뿐
그 안에는 여전히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