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인간의 몫.

by 참울타리


병원에는 온갖 사연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특히 암병동 환자들의 전자의무기록을 읽다 보면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감정이입을 피하려 해도, 몇 줄의 기록만으로도 한 사람의 시간이 통째로 밀려들어 온다.


오늘은 서른일곱 살의 젊은 여성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을 읽다가 숨이 막혀왔다. 그녀의 위암 덩이는 불과 삼 주 전의 항암 치료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자라나 복강을 가득 채웠고, 결국 대장을 막았다. 엿새 동안 배변을 하지 못한 채 극심한 복부 통증으로 입원해 있었다.


병실로 향하기 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병실에는 전남편으로 보이는 보호자와 그녀의 언니가 함께 있었다. 푹 꺼진 관자놀이와 깊게 패인 볼살은 그녀가 그동안 겪어왔을 고통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담당 주치의입니다.”


나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수없이 반복해 온 자기소개였지만, 이런 상황 앞에서는 감정을 완전히 밀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예상과 달리 밝은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파리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힘 있는 음성이었고, 나는 그제야 잠시 안도했다.


그녀는 비위관 삽입이 지금 단계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구역이나 구토가 없는 상황에서 비위관 삽입은 필요해 보이지 않으며, 유지 과정에서 오히려 불편감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무엇보다 지금은 암이 자라 외부에서 대장을 막고 있는 상태라 비위관을 이용한 감압술은 치료적 목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차분히 전했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이학적 검사를 시행했다. 그녀의 배는 항암 치료로 거무스름해진 피부 아래, 살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껍질에 가까운 감촉만 남아 있었다. 변이 가득 차 복부는 둔하게 부풀어 있었고, 통증이 심해 나는 최대한 힘을 덜어 눌렀다.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응급실 팀이 이미 외과에 자문을 의뢰했고, 수술적 치료 가능성에 대한 외과의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한 뒤 질문을 받고 회진을 마쳤다.


사실 외과의가 오지 않더라도 컴퓨터단층촬영은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근위부 대장은 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복강은 암 덩이로 채워져 있었다. 어떤 수술도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는 없고, 기껏해야 잠시 시간을 벌어주는 선택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실에 대해서는 환자에게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수술로 시간을 살 수 있는지 묻게 될 것이고, 그 질문에는 외과의가 가장 정확한 답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전자의무기록에는 2023년 중반, 이미 위암 삼기로 진단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수술과 항암 치료를 거부했고, 이후 2년 동안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는 과정이 담담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항암 치료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전신으로 퍼진 암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잦은 입원 동안 전남편이 곁을 지키며 그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혼자가 아니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수척한 모습은 내가 오래도록 외면해 온 기억 하나를 끌어올렸다. 담관암으로 살이 빠져 앙상하게 말라가던 작은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 중 한 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가족의 간절한 마음 속에서 수술이 결정되었고, 그러나 배의 수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작은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지금 와서 그 선택을 다시 본다면, 완화 목적이라 하더라도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두려움 앞에서 판단은 흔들렸고, 작은아버지는 암의 고통에 더해 수술이 남긴 고통까지 안은 채 마지막을 맞이해야 했다.


오후에 전자의무기록을 정리하다 외과의의 기록을 다시 읽었다. 암은 이미 복강 내에 손쓸 수 없을 만큼 퍼져 있었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은 불가능했다. 막힌 장을 절제해 장루를 만드는 방법으로 길어야 몇 주, 많아야 몇 달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선택지가 치료 옵션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그녀는 가족들과 상의한 뒤 다음 날 최종 결정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은 오래 흘렀고, 의학은 분명 발전했지만 이런 결정의 무게는 여전히 사람 앞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결정들 앞에서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서른일곱 살. 한창 싱그러울 나이의 한 사람이 이미 삶의 마지막 자락에 서 있다는 사실이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바벨탑을 쌓아 신의 자리에 닿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욕망과, 언젠가는 의학이 영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현대인의 믿음은 어쩌면 같은 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지극히 나약하고 유한한 인간일 뿐이다.


내일의 나는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다만 그 결정이 지닌 무게를 그녀가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다시 묻고, 함께 확인 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나는 그녀의 결정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녀가 맞이할 마지막이 조금은 덜 고통스럽고, 덜 어렵기를 바라며 끝내 아무것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는 사람으로서 그 곁에 남아 있으려 한다.


구원은 신의 몫이지만, 공감은 인간의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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