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냥 남들처럼 웃으며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병실을 걸어 나올 수 없었을까.
37세 말기 위암으로 인한 장폐색 환자를 보기 전,어제 내가 쓴 글에는 마치 주문 같은 다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오늘 그녀와 삼십 분 남짓 이야기를 나눴고, 그 끝에 거의 탈진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내 몸에는 더 이상 병동을 돌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오늘 회진 돌 때 나는 혼자 그녀의 병실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함께 근무하는 수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해 같이 회진을 돌았다. 다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음을 미리 알렸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말기 위암이 복강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외과팀은 장폐색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장루 수술을 제시했지만, 수술 이후에도 곧 다른 폐색이 찾아올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제 말씀드린 수술에 대해 가족분들과 이야기해 보시고 결정을 좀 하셨나요?”
“네, 수술 받기로 했어요. 다른 선택지는 없잖아요.”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녀의 결정은 존중받아 마땅했다. 다만 그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까지를 감수하는 선택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수술의 한계와 재장폐색의 가능성,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삶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항암 치료를 계속할 의향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항암을 하면서도 몸이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의 전신 상태로는 항암 치료를 버텨낼 체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나의 대답에, 병실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다른 선택지는 없나요?”
“수술은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수술은 안 할래요. 수술만 하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수술을 포기한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 보였다. 이후의 대화는 완화 치료에 대한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먹을 수 있기를, 통증이 잘 조절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유동식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자고 했고, 먹는 진통제의 한계 때문에 입원 호스피스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음을 설명했다.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집에서 받는 호스피스는 없나요?”
장폐색이 있는 상태에서는 재택 호스피스에서 선택할 수 있는 통증 조절 방법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는 예전에 통증 패치도 써봤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나는 사회복지사와 호스피스 팀에 재택과 입원 치료 중 어떤 선택이 더 적절할지 의뢰해 보겠다고 말했다.
“어제는 왜 아이들이 병원에 오지 못했나요?”
“아이들이 아직 열여섯이 안 돼서 병원 규정 때문에 못 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국 병원의 유연하지 못한 규정 때문에 내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 서른일곱 살의 엄마는 보고 싶은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를 억누른 채 수간호사 선생님께 이 경우가 예외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한으로 아이들이 오늘 병실을 찾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No one should be left alone, especially in moments like these. Their final days should be spent surrounded by the love of their family.”
그 선언문 같은 내 대답 끝에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나 역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혹시 울어버릴까 봐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깡마른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오늘의 삼십 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처럼 느껴졌다.
혼신의 연주를 끝낸 뒤 지휘자가 느끼는 탈진이 이런 것일까 소화기내과와 외과는 나의 긴 환자와의 대화로 한결 가벼워진 노트를 남기고 떠났다. 아마도 이 수고는 병원에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수술 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야 했던 작은아버지의 마지막과 같은 장면을 적어도 이 병실에서는 반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은 신의 몫이고, 공감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엄마에게 아이들을 안겨주는 일은 이름 없는 한국인 의사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