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와 방패 사이.

by 참울타리

지난번 한국 방문에서 학교 선배들이 저녁을 사주었다. 장소는 권숙수였다. 전통 한식을 지향하며 미슐랭 두 개의 별을 받은, 드문 한식당이다. 그날 식탁에 오른 한 상은 찌개와 밥, 국과 김치로 이어지는 한식의 기본 구조를 분명히 지키고 있었고, 그 점이 내 맘에 오래 남았다.


나는 보통 미슐랭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격에 비해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식 식재료를 빌린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다. 그런 곳에서 내가 알고 자라온 한식의 얼굴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그날의 음식은 달랐다. 설명이 아니라 맛으로 설득했다. 선배들의 지갑은 가벼워졌겠지만, 그날의 저녁은 분명 값어치를 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부모님께 그 식당 이야기를 꺼냈다. 자랑처럼 들릴까 조심스러웠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기엔 아쉬웠다. 그때 이미 마음속에서는 이곳을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은 식당’으로 정해두고 있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을 지나던 어느 날, 여느 때 같으면 봄 한국행을 고민했을 시기였다. 하지만 인생의 꽤 큰 변곡점을 앞두고 있어 이번에는 한국에 갈 수 없었다. 부모님 생각이 났다.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또다시 미루고 있다는 감각이 더 무겁게 남았다.


어제는 가족 채팅방에 동생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부모님을 모시고 그 식당에서 저녁을 드실 수 있도록 예약을 부탁했고, 가능하다면 반주까지 곁들여 코스로 맞춰 달라고 했다.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본 것을 부모님도 보셨으면 했다. 예상대로 어머니의 반대는 강했다.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비싼 식사에 쓰는 건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은 늘 그래왔듯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단단했다.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물러서지는 못했다. 고집스러운 어머니의 아들이 고집이 없을 리도 없었다.


나는 부모님이 내가 경험한 고급 한식의 정수를 한 번쯤은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경험만큼은 나누고 싶었다.


어머니는 차라리 그 돈으로 따뜻한 옷 한 벌을 사 입는 게 낫다고 했다. 절약의 미덕과 자식을 향한 태도가 한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내 부재를 돈으로 보상하려는 비겁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동생에게 290만원 (2천불)을 송금했다. 권숙수에서의 부모님 두 분 저녁과 반주 페어링을 예약하고, 남은 돈은 어머니 아버지께 따뜻한 옷을 사 드리라고 했다.


식사도, 옷도, 모두 필요하다는 내 쪽의 결론이었다. 타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두었던 선택에 가까웠다.


모르겠다. 내가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있을지는.


어쩌면 이건 사랑을 빌미로 한 내 고집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각자 다른 언어로 사랑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 같다.


고집스러운 엄마와 고집스러운 아들 사이에는, 창이 아니라 방패만이 서로 맞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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