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의사도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의사 역시 아플 때가 있고, 그 가족들 또한 병을 겪는다. 그 순간 의사는 더 이상 진료실의 주체가 아니라, 다른 의사의 판단을 기다리는 환자가 되거나 병원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놓인 보호자가 된다. 설명하던 입장에서 설명을 듣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던 위치에서 결정에 의존해야 하는 위치로 조용히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짧은 이동만으로도, 우리가 매일 너무 쉽게 사용해 온 말들과 절차들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무겁고 날카로운 것이었는지를 비로소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의료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다른 의사의 진료를 지켜보며 궁금함이나 의문이 생기는 순간들 또한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아버지가 여러 차례 폐렴으로 모교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담당 후배들의 처방을 보며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치곤 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개입의 욕구를 누르고 그저 고마움을 표했던 것은, 그것이 그들의 배움의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진료의 주도권을 흔드는 일이 결과적으로 내 아버지에게 득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 앞에서는 누구나 평정심을 잃기 쉬운 듯하다. 한 번은 파킨슨병 환자의 보호자로 가정의학과 1년 차 레지던트인 따님이 온 적이 있다. 흉부 엑스선에서 흉수가 관찰되어 정밀 확인을 위해 CT 촬영을 권했을 때였다. 그녀는 다소 방어적인 태도로 이의를 제기했다. 방사선 노출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마치 교과서적인 정답만을 요구하듯 날을 세웠다. 이제 막 의업에 발을 들인 전공의로서,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어머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상 현장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확신에 찬 태도 앞에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조심스럽게 주치의의 판단을 존중해 줄 것을 당부했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선배의 조언이 아니라 자존심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장문의 불만 편지를 남겼다.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열정이 지나쳐, 의료진과의 신뢰라는 더 큰 가치를 놓쳐버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었다. 근처의 유명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의 어머님이 파킨슨병으로 입원해 있었다. 연하곤란으로 인해 위관을 통한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동시에 정맥으로 수액이 투여되는 상황이었다. 그 대학병원 교수인 아들은 수액의 종류는 물론, 투여 속도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하며 치료 과정을 세세하게 통제하려 했다. 그는 어머니 케이스의 ‘정형외과를 전공한 내과 주치의'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보호자의 자리에 선 의사가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옳은 위치에 두고 담당 의사의 판단을 통제하려 들 때, 진료 현장의 책임 소재는 흐려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판단의 중심을 잃은 진료는 결국 환자에게 혼란만을 남긴다.
어쩌면 보호자의 자리에 선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날카로운 지식이 아니라, ‘채우기보다 비우고 내려놓는 용기’일지 모른다. 내가 최선을 다해 진료하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 또한 같은 원칙과 양심으로 내 가족을 돌보고 있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가 아닐까.
날이 선 칼일수록, 가장 먼저 베는 건 늘 자기 칼집이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경험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낮은 자리에서 판단을 맡길 줄 아는 태도. 그것이 의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가족을 지키는 보호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