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통역사를 대동하고 담관에 박힌 돌을 빼러 온 히스패닉 중년 여성을 수술 대기실에서 짧게 회진하고, 나는 다시 병동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담당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Dr. X, I screened her for suicide risk, and it triggered a psych consult.”
환자는 담관 결석 시술을 앞두고 다소 긴장되어 보였고, 감정적으로 예민해 보이긴 했지만, 내과적으로 특별히 걱정할 만한 소견은 없었다. 내가 던진 질문들은 모두 담관염과 감염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고, 자살 위험에 대해서는 하나도 묻지 않았다. 시술을 앞둔 환자에게 ‘자살 위험’을 루틴하게 묻는 일은, 지금까지 내 진료의 일부가 아니었다.
“Let me get back to her to clarify that. Thank you for letting me know.”
머릿속에 여러 가능성이 스쳤다. 마흔네 살의 여성이 담관 결석으로 입원했는데, 간호사에게 자살 생각을 털어놓았다는 사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기저에 오래된 우울이 깔려 있었을 수도 있다. 아까 스쳐 지나갔던 그녀 눈가의 물기가, 어쩌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마스크 뒤로 어색한 미소를 짓고, 나는 자살 생각이 있는지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통역사의 번역이 이어졌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갑자기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며 왼쪽 발목을 가리켰다. 전자발찌였다. 아까 스쳐 보았지만, 못 본 척하고 싶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치료하는 사람이지, 정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어 왔다. 그래서 굳이 개인사를 캐묻지 않으려 했다. 차트를 훑어보았을 때도 범죄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시커먼 전자발찌는 초록색 불을 깜빡이며, 무거운 족쇄처럼 그녀를 가라앉히고 있는 듯 보였다. 이상하게도, 나 역시 함께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숨을 고르고, 무슨 사연인지 물었다.
통역사는 그녀의 흐느낌 섞인 말을 듣더니 잠시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옮겼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추방 재판을 앞두고 가택연금을 명목으로 채워 둔 전자발찌였다. 그녀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발찌를 차게 되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하루 종일 자신이 범죄자가 된 것 같았고, 약을 먹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갉아먹는지, 그 감각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는 분명한 자살 위험이었다. 나는 정신건강 응급 입원 절차(1013)를 시행해야 했다.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다. 중요한 시술을 앞둔 상황에서, 이 절차가 치료를 지연시키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이유로 병상 곁에 안전 요원이 붙는다면, 그녀가 내게 느낄 배신감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자살 계획을 내비친 환자를 그대로 두는 것은, 의사로서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수간호사와 상황을 공유하고 절차를 진행했다.
이민 생활 이십여 년만에 이런 상황을 처음 마주했다. 미국이 요즘 어느 정치가의 말처럼 예전처럼 다시 ‘위대해지고’ 있는지, 혹은 그녀가 불법 체류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험한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어떤 이의 자유를 박탈하고, 소득 활동은 할 수 없게 하면서도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식의 가택연금, 삶 자체가 부정되는 경험은 결코 가벼이 볼 일도, ‘위대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전자발찌는 실제로 그녀를 자살까지 떠올리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장치가 그녀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자살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이다. 그것이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부르짖음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 서류를 다시 펼칠 때, 그녀의 족쇄도 함께 들여다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