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마지막 겨울을 함께한 아침

사랑한다면, 편안하게 보내드릴 용기도 필요합니다

by 참울타리

85세의 치매 할머니.

오래전 다리 골절 수술로 삽입했던 금속 고정기(하드웨어) 주변에

심한 감염이 생겼습니다.


2년 전, 길고 고된 정맥 항생제 치료를 마치고

경구 항생제로 어렵게 감염을 조절해오던 중이었는데,

최근 여러 사정으로 약을 중단한 사이

박테리아가 그 틈을 타 다시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심초음파에서는 이미 심장 판막에 박테리아 덩어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작은 그림 하나가,

할머니 몸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저는 할머니의 상태를 지켜보며

매일 따님께 경과를 전했습니다.

아마 그 소식이 따님에겐 하루의 희망이었을 겁니다.


오늘은 여러 과의 협진 결과를 전달드렸습니다.

할머니의 나이와 지병을 고려하면

감염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은 더 이상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몇 년 전에도 ‘수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했지요.

할머니의 몸은 그 사이 더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호스피스를…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순간, 그분이 그동안 애써 부정해왔던 현실이

조용히 얼굴 위로 떠올랐습니다.

사람마다 반응은 다르지만,

이분은 오히려 담담하게, 현실을 마주하려 애쓰셨습니다.



하지만 헤어짐의 슬픔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

그분은 제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울음 속에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사랑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언젠가 치매로 제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가족들이 저를 편안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여기를 떠날 사람들이니까요.”


그 말을 들은 따님은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은 듯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제 마음은 한동안 먹먹했습니다.

그런데 그 먹먹함 속에는,

묘하게 따뜻한 감정이 함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여정이

고통이 아니라 평화로 마무리되길 바라며

그날의 아침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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