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사는 법.

by 참울타리

인류는 사회를 이루었고, 그 어떤 개체도 만들지 못한 ‘문명’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 문명의 그늘에는 집단에 데인 개인들이 남는다. 사회가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더 복잡하게 얽힌다. 그리고 그 얽힘 속에서 작은 균열은 쉽게 상처가 된다. 상처는 소리 없이 번진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완성보다는 결핍에 가깝다. 내가 보고 있는 세계는 전체가 아니라 한 조각일 뿐이고, 타인의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 갈등이 사촌 누나의 집안일에서 드러날 줄은 몰랐다.


누나는 결혼할 당시 시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 결국 결혼은 이루어졌고, 시간은 흘렀으며, 두 아이를 둔 가정이 되었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은 지나간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누나는 북에서 내려온 고모의 유복녀였다. 그 사실은 평생 숨겨야 할 상처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앞둔 자리에서는 조용히 꺼내어야 할 이력서처럼 다뤄졌다.


누나와 매형은 오래된 교회 동갑내기 친구였다. 상견례도 하기 전, 매형의 집에서 반대가 있다는 말을 먼저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누나의 방황은 오래 이어졌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배경으로 누군가에게 거부당한다는 일은, 젊은 날의 누나가 견디기에는 쉽지 않은 짐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첫째 아이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소규모로 치러질 결혼식, 정해진 하객 수. 누나는 시어머니를 초대했다. 예의였다. 그러나 마음은 예의를 따라가지 못했다.


가깝게 느끼는 우리 어머니에게 털어놓은 누나의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초대는 했지만,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말에는 오래된 기억이 붙어 있었다. 반대받았던 시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감각, 끝내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자존심.


문명은 우리에게 예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예의가 감정을 치유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누가 우리를 사랑해 줄지는 알 수 없다. 때로는 나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과 같은 공간에 서야 한다. 원하지 않아도 함께하고, 잊고 싶어도 마주해야 한다.


그지점에서 나는 누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는 좀 내려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 또한 나의 프리즘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끝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일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몇십 년째 완독하지 못한 공상과학 소설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나 또한 내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다른 생각 앞에서 쉽게 불편해지고, 쉽게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며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


우리의 문명은 사실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끝내 이해되지 않는 사람과도 같은 자리에 서 있으려는 태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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