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고집을 부려야 할 때.

by 참울타리

스페인어 통역사가 그녀의 말을 전하는 순간,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괜찮다는 동의서에 서명하면… 정맥 통증 주사를 맞을 수 있나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30세 히스패닉 여성. 두 번째 임신. 두 달 넘게 끊이지 않는 구토와 오심으로 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고통을 견디려는 듯 몸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두 달이라는 시간이 새겨 놓은 무기력과 절박함이 깊이 배어 있었다. 떨리는 눈빛. 그 눈빛이 내게 묻고 있었다. 제발. 나는 그녀의 통증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랜 임상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녀의 병력은 단순하지 않았다. 정식 진단은 없었지만 제1형 당뇨로 오랜 기간 인슐린 펌프를 사용해 온 병력으로 미루어 보아 당뇨성 위마비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임신 8주차, 일반적인 입덧 약으로는 조절되지 않는 심한 구토와 탈수로 결국 병원에 들어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긴 입원 기간 동안 전담 의사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새로운 눈으로 케이스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결말은 비슷했다. 회진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녀를 눈앞에서 마주한 의사들은, 그 절박함을 외면하지 못하고 줄여두었던 정맥 통증약 용량을 다시 올렸다. 그리고 치료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산부인과 담당 의사는 다른 과에서 무언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케이스를 의논하려 전화했을 때, 그는 통증 의학과가 소극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통증 의학과가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더 올리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다. 마약성 진통제는 위마비를 악화시킬 수 있었고, 장기간 사용될 경우 출산 시 태아가 금단 증상을 겪을 수도 있었다. 통증팀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다만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매번 내가 서 있었다.


나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었다. 내과 전문의였다. 오심·구토 약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임산부에게 직접 써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그 불확실함이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그 조심스러움이 때로 나를 느리게 만들었다. 이틀 동안 나는 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조언을 구하며 그녀에게 맞는 약을 찾아보려 했다. 그가 내게 돌려준 것은 “통증팀을 다시 불러보고, 소화기 내과에 자문을 구해보라”는 말뿐이었다.


이 사람에게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되겠구나.


그에 대한 존중은 거기까지였다. 그가 자신의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공감하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공감은 치료가 되지 못했다. 실력 없는 공감. 벌린 입으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을 치료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오심약을 좌약 형태로 정기 투여하고, 임신 10주가 넘었으므로 스테로이드 치료도 시작하겠다고. 물론 동의를 구하는 말도 덧붙였다. 껍데기뿐인 동의였지만, 그는 어쨌든 그녀의 산부인과 담당 의사였으니까.

그날 밤, 나는 혼자 그녀의 차트를 다시 펼쳤다. 두 달치 기록이었다. 구토 횟수, 약 이름, 용량 변경, 짧은 메모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숫자가 아니라 그녀의 시간이 보였다. 이전 전담의가 좌약 형태의 약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거절했다. 이후 다른 약들을 이것저것 바꿔 처방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스테로이드도 충분히 시도된 적이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는 점점 확신해갔다. 그리고 동시에, 이 긴 기록 어디에도 누군가 끝까지 붙잡고 밀어붙인 흔적이 없다는 것도.


정맥 통증약은 끊어야 했다. 위마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투여하면, 위 배출이 더 느려지고 구토는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명확했다. 하지만 내일 아침 그녀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차트를 덮는 손을 잠시 무겁게 했다. 나는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다음 날 그녀에게 할 말을 정리해 보고 또 최종적으로 쓸 약들을 결정했다.


또 다른 아침이 찾아왔고 나는 통역사 옆에 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은 더 이상 정맥 통증 주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약은 위와 장의 움직임을 늦춰 오심과 구토를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구토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통증은 멈추지 않는 구역질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통역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언어로 바뀌는 동안, 나는 그 짧은 공백을 바라봤다. 내 말이 한 번 다른 언어를 거쳐야만 그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 거절조차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 그 거리가 나와 환자 사이의 닿을 수 없는 거리 같아서 슬펐다.


그녀는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좋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통증 주사를 놔달라고. 그 말도 통역사를 거쳐 내게 왔다. 한 번 걸러진 절규. 그럼에도 충분히 날카로웠다.


지리한 공방이 이어졌다. 나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병실을 나왔다. 뒤통수가 뜨거웠다. 그녀의 원망이 화살이 되어 날아와 박혀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변화는 빨리 찾아왔다. 약을 바꾼 다음 날, 24시간 동안 그녀의 구토 횟수는 단 세 번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차트에서 확인하고 잠시 멈춰 섰다. 정맥 통증약을 간청하던 그녀의 말은 어느새 “언제 집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통역사를 통해 장난기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내가 맞지 않았나요?”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두 달 만에 처음 보는 미소였다. 그 미소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이틀에 걸쳐 나는 천천히 유동식에서 고형식으로 음식을 바꿔가며 좌약을 경구약으로, 스테로이드는 서서히 줄여나갔다. 구토 횟수는 하루 한 번까지 줄었다. 고형식도 소화할 수 있었다. 퇴원하던 날, 그녀는 30세답게 장난스럽게 나에게 경례를 붙여올렸다. 내 마스크 뒤의 미소는 그녀는 끝내 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케이스매니저가 마련해둔 정맥 영양주사도 필요 없이, 기나긴 입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동 간호사들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이거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산부인과 의사는 끝내 내가 맞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문자 한 통이 왔다. 퇴원하기 이틀 전, 환자가 조금 나아지고 있다고.


나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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