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 다시 잠들려면 전화기를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손이 먼저 움직였다. 병원 페이지를 확인했다.
응급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후 9시 26분. 내가 오후에 오더한 하지 초음파 결과였다.
73세 할머니. 오른쪽 고관절 골절 수술 후 입원 중이신 분이다. 오늘 오후부터 미열이 있었고, 혈색소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수혈이 필요했지만 환자분은 계속 거부하셨다. 가족에게 전화를 했고, 정신건강의학과 협진까지 요청해야 했다. 쉽지 않은 하루였다. 그렇게 오후 7시, 나의 하루는 끝났다.
그런데 응급 메시지는 새벽의 고요를 비집고 들어왔다. 판독 결과, 오른쪽 다리에 작은 혈전 하나가 발견되었다.
보통이라면 항혈전제를 시작하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오후 내내 수혈 문제로 할머니의 마음이 초 단위로 바뀌었고, 지금 이 순간 혈색소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전화기로 전자 차트를 열어 의료기록을 확인했다. 그러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Findings were discussed with Dr. X by Dr. Y of radiology on 03/31/2026 9:25 via messenger.”
(2026년 3월 31일 오후 9시 25분, 영상의학과 Dr. Y가 메신저를 통해 Dr. X와 판독 결과를 논의하였음)
요즘은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해서 오후 9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9시 25분에 내가 영상의학과 의사와 초음파 결과를 논의했다고? 나 몽유병인가. 나를 다른 사람과 착각한 건가. 새벽 한 시에 잠이 확 달아났다.
“오호, 이놈 봐라.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웠네…”
새벽 1시 15분, Dr. Y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저녁 당직이 아니었고, 판독지에 기재된 나와의 논의는 사실이 아니니 정정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왔다. 그는 아무 답도 없었다. 한 문장을 더 보냈다.
“Let me know once you change the report. Thank you.”
(보고서를 수정하시면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delivered가 read로 바뀌었다. 그래도 그는 말이 없었다. 나는 틈틈이 판독지가 수정되었는지 확인하며 오전 근무를 이어갔다. 오전 10시 58분, 판독지에 문장이 하나 추가되었다.
“Findings were attempted to be discussed with Dr. X by Dr. Y of radiology on 03/31/2026 via messenger but the provider was off service.”
(2026년 3월 31일, 영상의학과 Dr. Y가 메신저를 통해 Dr. X와 판독 결과를 논의하려 하였으나 해당 의사는 근무 중이 아니었음)
완전한 항복 선언이었다. 쪽팔림에 답문조차 보내지 못하는 그에게 내 답장을 추가했다.
“Thank you for making an addendum to clarify it. I really appreciate it.”
(정정 내용을 추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겉으로는 감사 인사지만, 아마 그는 등에 비수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역시 그는 내 감사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하는 지옥에 갇혀버린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어젯밤, 나는 분명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기록 속의 나는 깨어 있었고, 누군가와 성실히 논의까지 마친 의사였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기록된 일이 더 쉽게 존재한다. 한 줄의 문장만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만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일을 한 사람이 된다.
기록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렇게 자기 보고서에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남기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