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는 건 늘 도박이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동료일 수도, 환자 보호자일 수도 있다. 그날은 둘 다 아니었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불퉁불퉁하게 통성명을 하고, 환자 X의 MRI 소견을 내게 쏟아냈다.
“Sir, with all due respect, I do not have this patient.”
(선생님, 실례지만, 이 환자는 제 환자가 아닙니다.)
출근 전 이미 환자 리뷰를 마친 터라,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중년의 방사선과 의사는 시비조로 “Who is responsible for this patient?” (이 환자 담당이 누굽니까?)라고 되물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답했다.
“I’m very sorry, but I don’t have the patient roster with me while I’m driving. Could you please check the roster?” (죄송하지만, 운전 중이라 환자 명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명단을 직접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내게 알아서 환자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연락해 자신에게 통보하라고 지시한 뒤 전화를 끊었다.
완전히 어이없었다. 누가 어떤 환자를 돌보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다니…
병원에 도착해서 누가 환자를 돌보는지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It’s Dr. Z. You can call him to discuss the case.” (Dr. Z입니다. 그쪽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그는 심드렁하게, “I already spoke with your director to find out who has this patient.” (이미 당신네 디렉터한테 연락해서 알아봤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Could I have your name, please?”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I don’t have a name.” (이름 같은 거 없습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판독지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 “Thank you for speaking with me, Dr. E.”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Dr. E.)라고 말하며 내 선에서 대화를 끝냈다.
알고 보니 그는 중년의 미국 의대 졸업생, 외국 의대 출신 내과 전문의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같은 백인에게는 비교적 무난하게 대했지만, 색깔 있는 외국 출신 내과 의사들에게는 특히 악명이 높았다. 여자 의사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나는 백인인 내 디렉터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그냥 덮으세요. 앞으로도 같이 일해야 하니 좋은 게 좋습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리즘은 어느 한 쪽의 희생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방사선과 디렉터에게 장문의 투서를 썼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시간대별로/초단위로 재구성했고, 그로 인해 환자 케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잊었다. 나쁜 기억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내게 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 년쯤 지난 어느 날, Dr. E가 내 환자의 방사선 소견을 전달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왔다.
“Hi, Dr. X. This is Dr. E, your so-called best friend.” (안녕하세요, Dr. X. Dr. E입니다. 소위 말하는 베프요.)
베프라 하기엔 목소리는 그리 친근하지 않았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How can I help you, Dr. E?”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Dr. E?)
“How could I forget you? I’ve been trying to avoid contacting you, but I had to call this time.” (어떻게 잊겠어요. 연락을 피하려고 했는데, 이번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그는 디렉터에게 끌려가 꽤 혼났다고 한다. 동일 문제가 반복되면 병원 프리빌리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다고 한다. 자존심 강한 Dr. E는 그 때문에 멘탈이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3년 동안 나와 이야기하지 않으려 피했던 그의 노력이, 왠지 가상하게 느껴졌다.
그가 인간적으로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그렇게 못되게 굴더니, 더 큰 힘에 참교육당한 뒤에는 나에게 더 이상 어쩌지도 못하는 모습. 내가 이런 인간 하나를 계도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이메일을 썼나 싶어 허탈했다.
내 의도와는 달리 나는 병원에서 참교육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