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한 얼굴의 한국 아저씨는 연신 입을 게워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오랜 암 치료의 무게가 그 안에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위관 영양관 부위에서 새는데,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아요.”
기름기 없는, 가죽만 남은 배 위에 위관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푹 꺼진 관자놀이, 가파른 숨이 드러내는 갈빗대가 그의 고난을 보여주는 듯 했다. 위관 주위는 특별한 감염 양상은 없어 보였다. 그는 63세 전이성 식도암 환자였다. 2주 전 위관을 다시 삽입했고, 그 통로가 아직 안정화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가 중재적 영상의학과에 전화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고 할게요.”
환자 방에는 아저씨, 남자 간호사, 나, 그리고 아이패드 속 한국인 통역사가 어색하게 자리하며 공기처럼 가라앉은 긴장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회진 전에 틀어놓은 통역 서비스를 잠시 중단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방 안의 공기는 한층 팽팽해졌다. 간호사는 팔짱을 끼고 내 시선을 피하며, 마치 자신도 이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듯 거부했다.
재미있는 건, 내가 한국어로 아저씨에게 말하는 동안 통역사는 단 한 마디도 간호사에게 동시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는데, 간호사는 나와 환자의 대화가 빠짐없이 통역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Let me get back to you after finishing up talking with the patient.”
아저씨는 나와 간호사 사이의 긴장을 느꼈는지 말씀이 없으셨다. 나의 이 요청은, 아저씨에게는 의사가 간호사에게 뭐라 하는 상황으로 비춰진 모양이었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던 사람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얘기만 하고 있었다.
“제가 한국말로 말씀드리고 있어서 통역사가 필요 없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저씨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셨다. 그는 자신이 나와 나눈 대화를 노트에 적고 싶다고 하셨다. 기운이 없어 글씨를 쓰지 못하는 아저씨를 대신해, 내가 내 이름과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그의 행동은 나에게 위협보다는 투사처럼 느껴졌다. 현재의 좌절을 어딘가에 쏟아내야 하는 사람의 몸짓.
“선생님, 지금 양쪽 폐에 암성 흉수가 어느 정도 차 있는 상태입니다. 우선 오른쪽에만 카테터를 넣을 계획이에요. 양쪽에 모두 넣으면 일상생활이 불편하실 수 있어서요. 숨이 차거나 불편하실 때는 통증 조절 약으로 먼저 관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아저씨는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대답하셨다.
“저는 양쪽 다 카테터가 있었으면 해요.”
아저씨의 기대 여명을 생각하면, 양쪽 카테터가 의미 있는 증상 완화를 가져다줄 리 만무했다. 이미 호스피스과에서 이 케이스를 팔로업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강하게 권하면, 아저씨가 선택을 강요당한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럼 제가 와이프분께 연락해서 이 치료에 대해 좀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저씨는 와이프가 지금 일하는 시간이라며, 자신이 직접 이야기해서 결정하겠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통증약 조절과 오른쪽 카테터를 받고 훨씬 가벼운 표정으로 매일의 회진을 맞았다. 다음 날 회진에서 아저씨는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조금은 더 생기가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쉽게도 왼쪽 카테터는 끝내지 못한 채 내 쉬프트가 마무리됐다.
다음 쉬프트, 내 머릿 속은 곧 게실염,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 케이스들로 더 복잡해졌다. 숨 좀 돌릴 수 있었던 어느 날, 나는 문뜩 그가 생각 나 차트를 열었다. 화면에 경고 사인이 떠올랐다.
사망 환자.
놀라서 그의 의료 기록을 찾았지만 다행히 그의 사망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의 기록은 왼쪽 카테터까지 받고 집으로 호스피스 퇴원하는 것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