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9분, 대구의 한 호텔 앞에 구급차가 섰다. 그리고 50분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미국 국적인 쌍둥이 산모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28주 이전에 자궁경부가 더이상 조기에 열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자궁경부 결찰술을 받았다. 절대적 안정을 취했어야 할 산모가 어떤 이유에서든 대구까지 이동했고, 거기서 조기 진통이 시작됐다. 신생아 집중치료실과 적절한 의료진이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다. 한 쌍둥이는 사망하고, 다른 하나는 저산소증으로 입원해 있다.
내 의견을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어떤 일이 되었든 절대 안정을 취했어야 할 산모가 그 장거리를 이동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자신의 상황과 치료를 이해하고 있는 의료진과의 거리가 차로 세 시간 네 시간 걸린다면 그건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 맞다. 대한민국의 어떤 산부인과 의사도 이 환자의 적극적인 거동을 장려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고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들을 나무라는 건 간단하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그렇지 않았을 꺼라고… 그것도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도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가치하에 그들을 살리려면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돌리고 있는지도 한 번 점검해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이 문제는 지방 필수의료의 죽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최근 900g 초극소 미숙아 치료 중 발생한 뇌손상에 3억원대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필수 의료를 보람으로 여겨 왔던 이들이 더 이상 보람만으로는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정말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케이스들을, 생명을 살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잡고 있던 의사들이… 더 이상 멱살잡히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소송 당하고 싶지 않아서, 피부·성형과 같은 미용에 매진하는 일이 늘었다. 저리스크에 고소득을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건 어느 자본주의 사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다.
지금 이 시스템을 손 보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우리는 외적으로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외적으로 아름다워지기 전에 더이상 꾸밀만한 삶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서늘한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