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02. 2023

까꿍! 독감이야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번호다. 싸늘한 기분이 주위를 감싼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 학교 보건 선생님이다. 까꿍이가 머리가 어지럽다고 보건실에 왔었는데 체온이 37.4도였단다. 애매해서 한 시간 더 공부할 수 있다고 하기에 교실로 보냈는데, 다시 왔단다. 또 열을 재니 37.8도라서 전화하셨다나. 밥 먹기 전까지 어떻게 할지 결정해서 전화를 달라고 하신다.


   사실 오늘은 나또 님이 나물이와 까꿍이 독감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둘 다 하원 스케줄을 조정해 두었었다. 아침에 까꿍이가 자꾸 킁킁대며 잔기침을 해서 혹시나 하던 차였다. 이런 전화를 받을 줄이야.


   참고로 이번 주에 이틀 연속 출장을 다녀왔다. 내일은 개교기념일로 휴업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은 강화도 체험학습 인솔이 예정되어 있다. 이 말인즉, 오늘 말고는 밀린 업무를 처리할 날이 없단 뜻이다. 당장 이틀 동안 다녀온 프로그램 참가비용 정산서도 교육청에 제출해야 한다.


   전화가 온 시간은 2교시. 수업이 잠깐 비는 시간이었다. 당장 3교시 수업을 앞두고 보건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니 멘붕이다. 나또 님에게도 연신 전화를 돌린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부장님께서 수업 대신해 줄 테니 그냥 조퇴를 달고 가란다. 일이 손에 잡히겠냐고.


   결국 급하게 조퇴를 달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나또 님은 보건실에 전화해서 까꿍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오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한산하다. 소아과가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까꿍이도 도착해서 진료를 봤다. 체온은 37.4. 목도 붓지 않고, 코도 크게 없는데 열이 나는 건 독감일 수 있단다. 독감 검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후. 까꿍이는 A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실비 처리가 가능하다고 해서 수액을 맞기로 했다. 나또 님은 결과를 듣고 교회로 복귀하고, 나는 남아서 까꿍이 옆을 지켰다. 열이 나면, 바늘을 꽂았던 부위에 멍이 심하게 들 수 있단다. 지혈이 잘 안 될 수도 있고. 수액을 맞는 내내 까꿍이 옆에서 해당 부위에 얼음찜질했다.


   수액을 다 맞고 바늘을 빼는데 역시나 지혈이 안 된다. 한참을 꾹 누르고 겨우 지혈을 시킨 채, 까꿍이와 병원을 나섰다. 약 먹을 때 먹고 싶은 간식도 사 들고 집에 왔다. 아직 오후 1시도 안 됐는데, 체감상 새벽 1시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이고, 약도 먹인 후에 까꿍이와 함께 누웠다.


   연일 계속되는 출장에 몸 상태가 최상은 아니었다. 까꿍이의 갑작스러운 독감 판정으로 인해 긴장했던 근육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고.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게 된 건,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톡과 전화들 덕분이다.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열어 달라고, 교장 선생님께서 어떤 기관에 요청하셨단다. 그러면서 나와 상의를 해 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단다. 나는 화요일쯤에나 부서 협의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받을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솔직히 기관명이 기억나질 않는다. 우리가 신청한 프로그램과 다른 기관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어제 출장은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포함된 댄스팀 공연 때문이었다. 26일에 있을 본 공연 전에, 리허설 겸 교육청 행사에서 펼친 깜짝 공연이었다. 다만, 현대무용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음악도, 동작도, 내용도 난해한 부분이 있어 어리둥절한 관객들 반응에 친구들이 크게 실망했나 보다. 하필 우리 팀 다음으로, 여고 댄스 동아리가 K-pop과 힙합으로 화려하게 무대를 만들기도 했고.


   동기부여를 위한 댄스 선생님의 이야기를 번역해야 하는데, 하필 월요일까지 해당 내용 번역을 부탁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기다가 갑자기 어떤 학생이 그만두겠다고 했단다. 학생한테도 연락해 봤는데, 뭔가 애매한 상황이다. 다문화 언어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상황을 알아보고, 부모님께도 연락을 드려달라고 했다.


   공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아이 한 명이 빠진다고 하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나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게다가 하필 나는 이런 날, 조퇴다. 내일은 개교기념일이고. 정신을 차려서 중간 정리를 해야겠는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사실, 쓰고 싶은 글도 많았다. 대략 얼개만 써 놓은 글이 두어 개 된다. 게다가 내일은 원래 아이들이 없는, 나만 쉬는 날이었다. 토요일은 도장에서 하는 걸스데이다. 또 시간을 돈 주고 산 상태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나의 세계는 멈추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어차피 등교 중지라, 아이가 학교에 못 가는 데, 눈치 보며 조퇴나 연가를 내지 않아도 되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은가. 나의 세계는 멈추었지만, 까꿍이와 함께하는 슬기로운 격리세계는 시작이다.


   게다가 다행히도 나물이는 멀쩡하다. 심지어 아무 증상이 없어서 오늘 독감 예방 접종까지 하고 왔다. 부디 옮지 않기를. 일단 지금도 씩씩하게 도장에 갔다.


   까꿍이는 독감이 나으면 예방접종을 해야 한단다. 독감 종류가 다양해서 하나에 걸렸어도 어쨌든 맞아야 한다나? 수액을 맞아서 그런지 지금은 체온이 37도다. 목이 칼칼한지 계속 잔기침을 하긴 하지만, 괜찮아 보인다. 감사하다.


   주절대고 보니 횡설수설 그 잡채다. 약국에서 산 피로회복제를 들이켜서 그런가. 내일은 좀 더 정돈되기를 기대하며. 물론 기대대로, 예정대로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지만. 갑자기 왔으니, 그렇게 또 독감이 훌쩍 우리 곁에서 떠나 주기를 바라면서 까꿍이와 정신을 챙기러 이만-.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쉰아홉번째

#에이뿔      

매거진의 이전글 롯데 돌카롱 × 몽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