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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03. 2023

플미가 너무해


대본집을 구매할 때 가끔 중고 매장을 이용하곤 한다. 구하기 어려워 대부분 새 상품을 구입하긴 하지만. 새 상품일 경우, 초판본이나 예약본이면 부록도 많고 배우들의 사인도 수록되어 있긴 하다. 물론 대본집 내용 자체가 중요할 뿐인 나로서는 그다지 끌리는 조건이 아니긴 하다.


   ‘밀리의 서재’와 친구가 된 이후로는, 되도록 밀리를 통해서 읽는 편이다. 이미 구매했는데, 뒤늦게 밀리에 합류한 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종이책을 구입하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최근 온라인으로 중고 책 주문을 시도했다. ‘뿌리 깊은 나무’의 경우, 1, 3권은 있는데 2권이 품절이었다. 어쩔 수 없이 2권을 중고로 주문했다. 상태도 좋고, 배송도 빨랐다. 그것 말고, 중고 매장에 가서 구입한 책들도 있는데, 당연히 책 상태가 다들 좋았다. 읽는 게 목적인지라, 상태가 최상일 필요가 없긴 하다. 글자만 보이면 되니깐.


   다른 건 다 저렴하게 구입했는데, 눈 돌아가게 비싼 대본집이 있었다. 중고 가격이 원가보다 비싸다고? 제목이 ‘인현왕후의 남자’다. 아, 이거 너무 보고 싶었던 작품 아니던가. 드라마도 아주 잘 나왔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절대로 원가 이상을 주고 중고 대본집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철칙이 있다. 차라리 안 보고 말지. 그런데 이건 너무 끌린다. 게다가 책 모양이 독특하다. 진짜 대본집처럼 가로로 길다. 편찬도 CJ E&M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쏟아졌던 타임슬립 드라마 중 수작(秀作)으로 입소문이 자자했다. 대본에서 어떻게 구현했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이 작가님의 작품이 뒤로 갈수록 세계관이 붕괴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결말까지 탄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새삥보다 비싸다니. 하-.


   내적 싸움에서 결국 구매하라는 유혹에 굴복하여, 중고 중의 제일 저렴한 걸 찾아본다. 최상 세트는 6만 5천 원인데, 중간 상태의 세트는 2권에 5만 7천6백 원이다. 7천4백 원 차이다. 양심이 있지, 3초 고민 만에 중간 상태를 담는다.  


   두근두근 배송이 왔다. 아뿔싸. 절판 프리미엄이 너무하다. 심지어 이건 감독님이 직접 보던 건가 싶다. 그것도 아니면 스태프인가? 세상에 글자가 보여서 다행인데, 안 보이는 부분 있으면 승질나서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르겠다. 몇천 원 아끼자고 ‘중’ 컨디션의 책을 구매했더니 낭패로구나.


   글씨가 보일락 말락 하는 형광펜 줄 긋기는 예사다. 온갖 화살표와 알 수 없는 메모가 가득하다. 극본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봤으려나? 아님 드라마 작가 지망생? 하. 최상으로 구입할걸. 아니, 그게 뭐라고. 인현왕후의 남자가 뭐라고. 참을걸. 갑자기 읽기 싫어진다.



   이걸로 대본집 리뷰를 쓰면, 원고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그나마 쌓아뒀던 2만 원 남짓한 마일리지로 구매했으니, 원가로 구매한 셈이라 생각해야 하나. 나처럼 요상한 덕후 덕에 이 책을 판매한 사람은 횡재를 했다 싶겠지.


   절판된 책인 데다가 전자책도 발간되지 않아, 프리미엄(웃돈. 이후 플미)이 붙었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어쨌든 플미를 얹어 샀으니, 읽어야지. 읽고, 리뷰를 써야지. 플미를 찢을 만큼 대단한 리뷰를 쓰고 싶지만, 그건 나름의 압박이니, 일단 읽고 쓰자.


   거 참. 아무리 생각해도 플미가 너무하지만, 쓸데없는 호기심의 대가인 거로-.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예순번째

#에이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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