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18. 2023

태권 소녀 나물이

태권도대회 첫 관람기


토요일 아침 6시. 평소라면 우리 모두 꿈나라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나물이와 나는 부엌에서 부스럭거린다. 핫팩, 따뜻한 물, 무릎담요, 물티슈, 티슈 등. 에코백에 이런 것들을 잔뜩 넣어준다.  


   우리가 이러는 이유는 나물이가 오늘 태권도 대회에 나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대회던가. 대회 참가비를 내던 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엄마, 나 그 대회에서 3등 안에 들면 글 써줘야 해~”


   그전에도 대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심지어 나물이네 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대회였다. 다만 참석할 수 없었다. 두 대회 모두 주일에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대회가 그녀 인생 첫 대회다.


   우리는 예정된 나물이 경기 시간에 맞추어 경기장에 도착했다.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경기가 진행되는 1층은 출입 불가라, 2층으로 갔다. 앉을자리가 없다. 까꿍이와 둘이 계속 난간 쪽에 서서 저 멀리 경기장을 바라본다.


   늦어져도 12시 정도에는 시작될 줄 알았던 경기가 1시가 지나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까꿍이랑 밥이라도 먹고 올까 하는데, 나물이가 저 멀리서 대기 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야겠다.


   드디어 나물이 차례다. 벌써 1시 40분이 넘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쪽 바로 앞이다. 핸드폰을 준비한다. 어쩐지 내 손이 자꾸 떨린다.


   4명이 경기를 치른다. 나물이는 앞줄 청색 칸에 있다. 경기가 시작됐다. 오, 생각보다 잘한다. 사실 나물이가 제대로 태권도하는 거 처음 본다. 품새 선수로 욕심이 난다는 부관장님 말씀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경기가 끝나고 판정의 시간이다. 올래! 3명의 심사위원 모두 청색 깃발을 들어 올린다. 일단 은메달 확보다. 다시 2명의 경기가 펼쳐진다. 1, 2위를 가르기 위한 경기다. 처음에 나물이네 조 모두가, 나물이 빼고 남학생들이라 다소 걱정을 했었는데, 잘하고 있다.


   내 눈엔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보인다. 아니, 사실 나물이만 보인다. 절도 있는 동작이 그저 내 새끼 우쭈쭈 모드다. 이번에도 나물이는 청색 칸이다. 두근두근. 와! 3명 모두 청색 깃발을 들어주신다. 나물이 개인전 1등!

   나물이가 메달을 받고 신이 나서 달려온다. 금메달이라니. 나와 나또 님의 유전자에서 나올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니 기특하다. 토닥여 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젠 페어만 남았다. 휴식 없이 바로 이어지나 보다. 나물이는 경기에 방해될까 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 나와 까꿍이도 또다시 대기 모드다. 식사하고 오면, 경기를 놓칠 것 같아 계속 기다린다. 그나마 유치부와 저학년 학생들이 빠져서 경기장이 다소 한산해졌다.


   금방 이어질 것 같던 경기는 1시간이 지난 후 열렸다. 나물이와 짝을 이뤘던 친구가 최근 독감에 걸려 연습을 많이 못했다. 대기하면서 둘이 계속해서 합을 맞춰보는 모습이 보인다.


   2대 1로 일단 1, 2위 결정전에 올랐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두 팀 모두, 막상막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보인다. 에고, 역시나, 아쉽게 2:1로 졌다. 2위 확정이다.


   메달을 받고 올라오는데, 나물이와 짝꿍을 이뤘던 친구가 운다. 아쉬움의 눈물이란다. 독감에 걸렸는데도 이 정도면 잘한 거라고, 2위라고,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여 줬다. 인증사진도 찍어줬다.



   이젠 집에 가도 된다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그렇게나 노래를 불렀던 ‘어글리 스토브’다. 식당에 도착하니, 벌써 4시가 넘었다. 우리 모두 그때까지 쫄쫄 굶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일단, 나물이가 오늘 꼭 자기 대회 나간 이야기를 글로 써줘야 한단다. 솔직히 나물이가 아무런 상을 타지 못했어도, 글은 쓰려고 했었다. 그런 말은 넣어둔 채, 알았다고 꼭 써 주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나물이가 또 그런다. “엄마, 나 잘하지? 아까 관장님이 나 1등 했을 때, 이제 품새 선수단 들어오래. 엄마, 나 품새 선수단 하고 싶어요.”


   일단 배고프니 밥을 먼저 먹자고 이야기를 돌린다. 몇 달 전부터, 부관장님이 계속 권하시기에, 그냥 그러려니 넘겼는데, 막상 대회에 나간 나물이를 보니, 더 고민이 된다. 그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첫 대회를 잘 치른 아이를 마구 축하해 주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



   덧붙여, 하루 종일, 언니를 응원하느라, 덩달아 같이 밥도 못 먹었던 까꿍이도 고생이 많았다고 안아주고 말이다. 고생했어, 까꿍아. 까꿍이도 언젠가 대회에 나가면 엄마가 또 응원하러 갈게.


“나물아, 처음 나간 대회에서 좋은 성적 거둔 거 축하해! 엄마가 나물이가 태권도하는 거 처음 봤는데, 태권도를 1도 모르는 엄마가 봐도 정말 잘하더라.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하는 줄 미처 몰랐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좀 더 고민해 보자. 피곤했을 텐데 푹 쉬자~.”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일흔다섯번째

#에이뿔  

매거진의 이전글 에이뿔이 되어주기로 약속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