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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19. 2023

구리스마스 아니,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 관람 후기

지난 금요일, 부평아트센터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인 듯 뮤지컬인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연이었다. 어쨌든 다소 과장을 섞자면, 브로드웨이 뺨치는 퀄리티의 공연이었다고나 할까.


   이 작품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공연으로 보는 느낌은 매우 달랐다. 물론 지난한 준비 기간으로, 가기 전에 다소 지친 부분은 있었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진행한 뮤지컬에서 외국인 친구들의 반응이 낯 뜨거울 정도였단다. 자는 건 기본이요, 떠들고 장난치고, 껌 씹고. 자신이 앉았던 의자 정리마저 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극히 일부만 데리고 간 선생님이 너무 부끄러우셨단다.


   오늘 공연에선 절대 그런 부분을 용납할 수 없다. 단단히 교육했다. 아이들이 공연 내용을 모르면 지루할 수 있어서, 수업을 들어가는 반에서는 공연 내용을 계속 설명해 줬다. 공연 팸플릿으로 내용을 숙지시키고, 유튜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애니메이션 요약 영상도 보여줬다.


   교실에 있던 동화책도 같이 읽었다. 모르는 단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내용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장 에티켓에 대해서 온몸으로 설명했다. 자면 안 돼요. 떠들면 안 돼요. 껌 씹으면 안 돼요. 등등.


   이날 올겨울 첫눈까지 내렸다. 아이들에게 각자 부평아트센터까지 오라고 하셨단다. 아이들이 잘 찾아올 수 있을지 다소 걱정되긴 했다. 우리 부서는 미리 가서 결제하고, 프로그램 북을 받아서 훑어보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도착했다.


   프로그램 북에서 스크루지 역을 맡은 배우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그는 스크루지가 절대적 악인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말한다.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 다만 사랑에 인색한 사람이자 삶의 방향이 조금 어긋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란 다시 태어남의 기적이라고, 예수의 탄생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예비하는 사건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아주 재미있게도 그는 스크루지 앞에 나타나는 세 유령을 동방박사 세 사람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의 인터뷰를 보았기 때문일까. 극의 흐름도 잘 잡혔고,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익숙한 크리스마스 찬양이 나와서 더 좋았다. 신나게 손뼉도 치고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박자도 맞추며, 공연에 함께 참여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공연 내내 스크루지를 보며, 지금을 사는 내 모습을 투영하곤 했다. 살아가는 목적을 잃어버린 삶. 사랑하는 여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래서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스크루지의 삶이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버린 삶.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삶. 크리스마스가 ‘구리스마스’로 변하여 어쩌면 색이 바래버렸을지도 모르는 그런 삶의 모습들.


   이 작품은 그런 내용을 억지스럽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요약본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대사들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런 내용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공연은 총 2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됐다. 1부가 70분, 인터미션 15분, 2부 50분. 인터미션이 지나고 나서부터 내 뒤쪽 아이들이 난리가 나긴 했더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한국 친구들이었다) 중학생들에게 아직 2시간 넘는 공연은 역시 무리인가 보다. 개인적으로도 1부 길이로 공연이 압축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생각보다 공연이 너무 좋아, 가족들과 또 오고 싶었는데, 딱 금, 토, 일 3일 간만 진행되는 터라 아쉬웠다. 토요일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물이의 태권도 대회였기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가족과 함께 즐기고 싶은 공연이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심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부디 모두에게 구리스마스가 아니라, 진정으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소망하며,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일흔여섯번째

#D라마틱

#인천문화예술회관_90회정기공연

#크리스마스캐럴

#부평아트센터_해누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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