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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22. 2023

아프니까, 낡은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낡은이다. 늙음이 아닌 낡음, 그 자체다. 몇 년 전, A형 독감에 걸렸을 땐, 고열로 끙끙 앓다가 페라미플루 수액 한 방에 깨끗이 나음을 입었다. 수액의 기적을 맛보았다고나 할까.


   열이 없는 이번 독감엔 수액의 D라마틱한 효과 따윈 없었다. 지루한 장마처럼 아프다. 재채기를 했다가, 기침을 했다가, 목이 맛이 갔다가 그런다. 머리는 계속 묵직하고 안개 낀 것처럼 뿌연 느낌이다. 하루 종일 잠만 잔다.


   호기롭게 몸이 괜찮으면 수요일에라도 출근하겠다고 했는데, 당장 내일 출근이 걱정이다. 강사 선생님도 아버님이 아프셔서 오늘 못 오셨단다. 내일도 어찌 될지 모른다. 내일마저 못 나가면 다른 선생님들께 너무 민폐다. 어찌 되었든 나가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데도 힘들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겠는데,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면 속이 메스껍다. 약을 먹으면 잠이 쏟아진다. 선잠을 자고 일어나면 계속 몽롱한 정신 상태의 연속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 대본을 읽고, 낡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낡지 않겠다고 해도, 이미 낡아버린 몸이 문제다. 낡은 데다 부풀어 오르기까지 했다.


   겨울옷 꺼내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꾸역꾸역 옷 정리를 해 본다. 뭐 하나 입을 게 없다. 딱 봐도 들어가지도 않을 태세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느른한데, 옷은 죄다 버려야 할 판이니 괜스레 서럽다.


   몸이 나아지면, 정말이지 뭐라도 해야겠다. 자꾸 책장으로 쓰게 되는 실내용 자전거도 타고, 호기롭게 산 닌텐도로 운동도 해야겠다. 먹는 것도 조절하고, 이래저래 더 낡아지지 않게 발버둥을 쳐야 할 때인가 보다.


   아프니까, 얼마나 낡은이인지 이제야 알겠다. 그동안 내가 내 몸을 얼마나 방치했는지 알겠다. 그저 자전거 보관함에 묶어놓은 녹슨 자전거처럼 그저 나를 놓아두었더랬다. 물기도 닦아주고, 기름칠도 하고, 묵은 때를 벗겨야겠다.


   반짝반짝 새것처럼 바뀌진 않더라도,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진 않겠지. 부디, 제발. 일단 오늘은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하는 것에 집중하자. 약 먹었으니 얼른 누워 자자, 내일을 위해-.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일흔아홉번째

#D라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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