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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5. 2021

네 일이 내 일이 되어야

내일이 있답니다

옛날, 옛날에 말희는 계속해서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중이었어요. 아, 이걸 말했던가요? 말희가 일하는 학교는 이상하게도 은혜 ‘풍’ 씨가 많았어요. 이 세상에 은혜 ‘풍’ 씨는 모두 모아놓은 줄 알았지요.


   그래서 말희는 그곳이 은혜가 풍성한 학교일 거라 생각했어요. 다만, 이상하게도 말희가 속한 국어과에는 은혜 풍 씨가 별로 없었어요. 대신 국어과 10명 중에 부장님이 4명, 기획실장님이 1명 있었지요. 은혜 풍 씨 대신 부장님이 풍성한 국어과였어요.


   말희는 어쩐지 어깨가 올라갔어요. 이 학교를 이끄는 부장님 급이 무려 다섯이나 되니, 국어과는 이 학교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올라간 어깨 위에  얹힌 건 일뿐이었어요.


   우아한 부장님은 타자가 느리다며  말희에게 시험 문제를 타이핑하라고 했어요. 지 부장님은 본인 수업도, 야자 감독도 모두 모두 말희에게 넘겼지요. 고매한 부장님은 부장님이 맡은 예체능반 아이들의 계산되지 않은 성적표를 넘겼어요. 예체능반 아이들은 수상실적과 등급에 따라 가산점이 달라졌거든요. 말희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국어 가산점을 계산하곤 했어요.


   그렇게 은혜 풍 씨와 부장님이 풍성한 학교에 말희가 해야 할 일도 풍성했어요. 말희는 모든 학년의 시험문제를 학기마다 출제해야 했고, 이원 목적 분류표를 작성하고 분석해야 했고, 예체능반 아이들의 가산점을 계산해야 했어요. 야자감독은 매일 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지요.


   말희는 부장님들이 은혜롭게 내려주시는 일을 하다가 결국 쓰러졌어요. 하지만, 딱 하루 만에 퇴원을 하고 출근해야 했어요. 병문안을 온, 지 부장님이 그랬거든요. 니가 여기 누워 있으면, 당장 내일 내 야자 감독은 누가 하냐고 말이죠.


   띨띨한 말희는 병문안 온,  부장님을 통해, 그제야 학교에 은혜  씨가 많은 이유를 알았어요. 이사장님이 은혜  씨라는 , 은혜  씨가 아닌, 국어과의 부장님들은 대부분이 은혜  씨의 아내이거나, 남편이거나, 친척이라는  말이죠. 은혜  씨가 많은 말희네 학교는 그러니깐 말하자면 씨족사회였던 거예요.


   그래요, 말희는 씨족이 아니었어요. 말희는 김말희지, 풍말희가 아니었거든요. 그렇지만,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서 씨족들을 도와야 했어요. 씨족 일이 곧 내 일이 되어야 했지요. 그래야 말희에게도 내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은혜가 풍성한, 아니 은혜가 풍선 같은 씨‘족’ 학교에서 말희는 그렇게 내일을 기약하며, 네 일, 내 일 모두를 품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여러분도 꼭 기억하세요. 네 일이 내 일이 되어야, 우리에겐 내일이 있답니다. 오늘의 동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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