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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Sep 16. 2021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가 아니에요

지난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새벽 다섯 시 반이에요. 하늘이 아주 짙은 파란색에서 유자청 타 놓은 것처럼 조금씩 노랗게 변하는 시간에 ** 아파트 앞 C* 편의점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려요.


   “아이고, 철용 총각 아니야? 오늘도 그거 먹게?”

   “네,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려면 이걸 마셔야겠더라고요...”


   철용이는 음료수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요. 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파란 몬스터 캔 2개를 꺼내요. 얼마나 마셨는지, 편의점 점장 아줌마는 ‘또 그거 먹냐’며 말을 붙여요.


   몬스터 에너지, 고 카페인 음료예요. 기분 탓인지 이걸 마시는 게 커피 마시는 것보다 더 잠이 잘 깨요. 거기다 커피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특히 철용이가 요즘 마시는 파란색 망* 로*가 제일 맛있어요. 어떻게 아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시원하게 한 캔 따서 원샷을 때려요, 나도 모르게 ‘캬!’ 소리가 나와요. 다시 얼마를 더 걸었을까요. 회사에 도착하니 여섯 시가 되었어요. 밤새 당직 근무를 한 수위 아저씨가 철용이를 반겨주어요.


   “철용 씨, 오늘도 일찍 나왔네요.” 인사하는 수위 아저씨의 눈에는 졸음이 잔뜩 끼어 있어요. 철용이도 하품 한 가득 입에 물고서 “안녕하세요, 아저씨.” 인사를 해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요. 오늘도 겁나 느려요. ‘띵동’ 문이 열려요. 4층을 눌러요.


   ‘문이 열립니다’


   저 끝까지 복도는 깜깜해요. 철용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센서등에 불이 켜져요. ‘띠, 띠, 띠. 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고 사무실에 들어가요. 불을 켜고 컴퓨터를 켜요. 어라? 번역할 때 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른 걸 켜요. 일러스트(이미지 파일 등을 편집할 때 쓰는 프로그램)에요.


   “아, 철용 씨. 지금 이거 할 때야? 일에도 T.P.O(Time, Place, Occasion의 머리글자, 무언가에 있어 시간, 장소, 상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 쓴다)가 있다고, 지금은 철용 씨 업무 시간인데, 이걸 보내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지난 주였어요. 철용이는 엄청 바빴어요. 아, 평소에도 개 같이 바빠 죽겠는데, 무슨 바쁘다는 타령이냐고요? 그날따라 번역해야 할 것들과 게시판에 붙여야 할 포스터가 겹쳐 있었거든요.


   대학에서 만난 E대 나온 정 교수는 분신술이나 가르쳐주지 뭘 가르쳤는지 당최 모르겠어요. 결국 철용이는 급한 대로 번역 일 할 시간에 포스터를 만들어서 부장님께 보내드렸어요.


   최 부장님은 ‘아유, 철용 씨. 바쁠 텐데 이번에도 아주 잘했어요’ 칭찬 대신 ‘일에도 T.P.O가 있다’는 아주 좋은 교훈을 침까지 열심히 튀겨 가며 말해주셨어요. 그 말을 들은 철용이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고 자리에 가서 다시 앉았어요.


   ‘그래, 일찍 나와서 하자!’


   뭔 개쌉소리냐고요? 하지만, 뭘 어쩌겠어요? 까라면 까는 일은 군대 이등병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에요. 아, 요즘엔 이등별이라 안 깐다고요? 그래요, 이건 오직 철용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어요. 어쩌겠어요, 이게 다 철용이가 비정규직인 탓이에요.


   어쨌든, 비정규직 철용이가 기계인 줄 알았더니 사람은 사람인가 봐요. 저 조는 꼴 좀 보세요. 그냥 아예 라꾸라꾸 침대라도 하나 사서 누워서 잤으면 좋겠어요. 아, 생각해보니 매달 나가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철용이 월급으로는 라꾸라꾸 침대는 무슨, 그냥 목베개가 팔자예요.


   “어휴,   졸고 있네.”

   “내버려 두어, 저 호구 새끼 때문에 우리가 꿀 빨잖아.”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오기 시작해요. 이 주임과 김 대리예요. 사실 이 주임과 김 대리 모두 철용이보다 일러스트를 훨씬 더 잘 다뤘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어요. 철용이가 있는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나요?


   저런, 오늘따라 둘의 앞에서 까는 호박씨가 철용이 귀에 들리고 말았어요, 마침 그때 잠이 깬 거예요. 철용이는 다 듣고 있었지만, 못 들은 척했어요. 일어나면 뭐 어쩔 건가요? 철용이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어요. ‘호구 새끼’ ‘저 새끼 때문에 꿀 빨지’ 이 주임과 김 대리의 웃음소리가 맴돌아요.


   자려고 누웠는데, 평소처럼 잠이 오지 않아요. 혹시 김 과장도, 최 부장도 나를 병신 호구로 생각하는 걸까 하는 마음에 괜히 눈물이 흘러요.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가요.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뜬금없이 어렸을 때 보았던 귀여운 어린이용 영상이 떠요.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래요’ 아니었어요. 비정규직 철용이에게 일 더하기 일은 근무 초과였고, 호구 새끼였어요.


   이제 와서 알아버리다니, 너무 늦은 걸까요? 갑자기 벌떡 일어난 철용이는 불을 켜요.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러요. 순정을 짓밟힌 철용이, 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깡패라도 되려는 걸까요?


오늘의 동화, 끝!




현실에서 못하는 불금,

브런치에서라도 즐기겠습니다. 금요일은 쉽니다.

더불어서 다음 주는 추석 연휴인 관계로

한주 쉰 뒤에 찾아뵙겠습니다.


9월 27일(월)에 음감님의 잔혹동화가 이어집니다.


저희의 이야기에 공감하신다면,

그래서 비정규직 잔혹동화를 계속 보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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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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