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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Sep 09. 2021

그런 건 니나 하세요

안돼, 하지 마, 도망쳐

지난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이야, 철용 씨. 못하는 게 뭐야?”

“별 거 아닌걸요... 감사합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사내 디자이너가 사표를 던졌대요. 철용이네 회사는 난리가 났어요. 당장 포스터를 디자인해야 하는데, 만들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이야기를 들은 부장님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들어와요.


   “우리 부서에 포스터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 없나?”


   부장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시선을 회피해요. 저런, 모두 그런 건 할 줄 모르나 봐요. 그때 철용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요. “저,,, 부장님, 제가 좀 할 줄 아는데요...”


   “야, 잘 들어. ‘나다싶’이라는 게 있단 말이야.”

   “그게 뭔데, 형?”

   “나다 싶으면 나가는 거지. 이것만 잘하면 군대에서 예쁨 받는다?”


   사촌 형의 ‘나다싶’이 떠올랐어요. 사실 철용이는 눈이 너무 나빠서 군면제를 받았어요. ‘나다싶’이 정말 군대에서 예쁨을 받는 방법인지, 아닌지 확인 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뭐 어때요. 군대에서 예쁨 받는 방법이면 회사에서도 똑같지 않겠어요?


   처음엔 반신반의로 철용이에게 일을 시킨 최부장은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번역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포스터도 기똥차게 잘 만들었거든요. 그날부터 사내 게시판을 볼 때마다 괜히 철용이는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온통 철용이가 만든 작품뿐이었거든요.


   “굳이 또 뽑아야 하나? 그 친구 잘하잖아...”


   매번 포스터를 만드느라 눈이 벌게져서 야근을 하는 철용이의 모습이 최부장은 안쓰러웠어요. 월요일 부장회의 시간에 이야기를 꺼냈어요. 사내 디자이너를 적어도 새로 한 명 뽑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에요.


   하지만, 모두가 철용이가 있는데 굳이 또 뽑아야 하냐고 오히려 최부장에게 물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디자이너를 새로 뽑으려니 채용 공고를 내야 하고, 채용 공고를 내면 면접을 봐야 하고, 면접을 봐서 사람을 뽑으면 새로 일을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미래의 일들이 최부장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에이, 그래. 지금도 잘하는데 뭘.’


   그렇게 최부장은 다시는 디자이너 새로 뽑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철용이는 오늘도 빨간 눈의 토끼가 되어 집에 세수하러 갔다가 물만 먹고 다시 출근을 한다고 해요. 이런 철용이가 안타깝다고요? 뭐 어쩌겠어요. 독자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상황을 만나면 이렇게 외쳐보아요.


나다싶, 그런 건 니나 하세요.”


오늘의 동화 끝.




비정규직 잔혹동화를 공감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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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브런치에서 불금을 즐기는 날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음감님의 잔혹동화를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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