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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Sep 02. 2021

아내를 저장하지 못한 너에게

발 번역, 멈춰!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앞선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철용이는 시간 강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순 없었어요.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도와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카톡으로 보여준 웃긴 짤을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거 누가 번역했냨ㅋㅋ’

‘아닠ㅋㅋ 밀면이 왜 When You push임ㅋㅋㅋㅋㅋㅋ’


   부산 음식으로 유명한 밀면 메뉴판이에요. 누가 영어 번역을 했는지, 외국인이 보면 깜짝 놀랄만한 작품이에요. ‘이 정도면 나도 하겠다’ 생각이 들어요. 핸드폰으로 알바지옥, 알바몽 같은 앱을 들락거려요.


   “곽철용 씨 되시죠? 다음 주 화요일 오후 두 시까지 @@빌딩 13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다음 주에 오래요. 철용이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면접을 준비해요. 면접 당일이 되었어요.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고 정장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선 철용이는 괜히 한번 더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쳐봐요.


   면접은 크게 어렵지 않았아요. 질문에 대답한 뒤 짧은 영상을 보여줬어요. 미국 드라마예요. 30초 정도 영상이 흐르더니 멈춰요.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대화 내용을 적어보래요.


   “혹시 이런 분야 경험이 있으신가요? 훌륭하시네요. 다음 주부터 출근하는 걸로 합시다.”


   이 정도는 우습다는 듯 거침없이 내용을 적었어요. 앞으로 영상에 자막을 다는 일을 할 거라고 해요. 철용이는 속으로 ‘아, 그래도 시간 강사보다는 낫구나’ 생각을 해요. 그렇게 철용이의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네, 저는 김민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철용 씨.”


   철용이는 민수와 같은 팀이 되었어요. 민수가 자막이 필요한 영상을 보고 1차 번역을 한 뒤 영상과 함께 넘겨주면 철용이는 그걸 보고 자막을 완성해서 검수하는 사람에게 넘기는 일을 하면 된대요. 일을 알려주는 민수의 발음이 어쩐지 어눌해요.


   알고 보니 미국에서 15년이나 살았대요. ‘15년 살았으면 완전 원어민이네?!’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철용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건 당연해 보여요.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사수라니 철용이는 내심 마음이 든든해요.


   “아니, 미국 살다왔다며!”


   철용이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일을 시작하니 민수는 미국에서 15년은커녕, 15일도 채 살다온 것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기본적인 표현들도 잘 몰라 직역해버리는 민수의 모습이 철용이는 영 미덥지 않았아요. 결국 하나하나 다시 번역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어요. 자막 싱크 안 맞는 건 이제 귀여울 정도였어요.


   “아니, 아내를 저장하긴 왜 저장해! 아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철용이는 더 이상 민수를 못 봐줄 것 같았어요. 너무 화가 나서 김 과장에게 이야기하기로 해요. 민수 이야기를 꺼내는 철용이의 말을 들은 김 과장은 매우 난처하다는 듯 얼굴을 구겨요. “철용 씨, 이따 시간 되면 점심 같이 하지요.”


   회사 근처 백반 집에서 김 과장과 식사를 해요. 철용이는 빨간 제육볶음을, 김 과장은 김치찌개를 시켰어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고 나와요. 손에는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서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요. 커담(커피와 담배) 타임이에요.


   “철용 씨, 민수 씨가 사실은 말이지...”


   차라리 허언증 환자라던가, 뭐 그런 거라면 어땠을까요? 철용이는 단박에 자기가 잘못 들어왔다는 걸 알아챘어요. 김 과장 말에 의하면 민수가 15년 미국에서 살다 온 건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다만, 잘난 아버지의 백으로 살다 온 거라 딱히 공부를 하고 온 건 아니었고, 그래서 영어 실력이 그 모양이었던 거예요. 그 잘난 아버지가 누구냐고요?


   “아니, 상무님 아들이라고요?”


   어쩐지 느낌이 싸하더라니, 말로만 듣던 낙하산이 여기 있었어요. 귀하신 김상무 님 아들이 바로 철용이네 팀 김민수 씨였던 거예요. 어쨌든 미국에서 15년 살다온 것도 맞으니 회사 안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오늘도 철용이는 답답한 마음에 이를 바득바득 갈아요. 하지만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을 하진 않아요. 김상무 님의 귀한 막내 아드님을 절대 놀라게 해서는 안되거든요.


   그렇게 민수는 오늘도 아내를 저장하지 못하는  물론, SATURDAY 목요일로 번역해요. 토요일 아니냐고요? 당연히 시차 반영이죠.


    이렇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일하는 민수는 회사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듣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오늘의 동화, 끝!





현실에서 못하는 불금, 브런치에서라도 즐기겠습니다.

금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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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 음감님의 잔혹동화가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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