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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Aug 26. 2021

더블로 가기 전에 묻힌 이야기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


옛날 옛날, 어떤 촌동네에 철용이라는 아이가 살았어요. 철용이는 비행기 한번 타 본 적 없었지만, 영어를 참 잘하기도 하고 잘 가르쳤어요.


    9등급이었던 아이도 철용이 앞에만 앉혀 놓으면, 어느새 4등급, 3등급, 어떤 아이는 1등급도 맞았대요! 비결이 뭐냐고 묻는 말에 철용이는 말했어요.


“내가 영어 과외를 열아홉에 시작했다. 그 나이 때 과외 시작한 놈이 백 명이라 치면은... 지금 나만큼 하는 놈은 나 혼자 뿐이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조는 놈 재끼고, 말 안 듣는 놈 보내고, 안경 재비같이 잘난 척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학교 선생님도, 학원 강사들도 ‘뭐 저런 애가 다 있냐’며 혀를 내둘렀어요. 철용이의 영어 실력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유명했어요. 같은 과 후배들을 모아 스터디도 해주고요, 교양 영어 수업에 조교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그렇게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던 철용이는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아, 물론 등 떠밀려 간 건 아니었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내심 걱정 하나가 있었어요. 대학교 수업료보다 훨씬 더 비싼 학비가 문제였지요.


   “철용아, 너 나랑 같이 일 한번 안 해볼래?”

   “일이요?”


   학부 시절 전공 수업을 가르쳤던 정** 교수였어요. 철용이는 학부 시절 정 교수의 수업을 모두 다 들었고, 정 교수도 그런 철용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정 교수는 철용이에게 학부 학생들 중에 장교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영어 수업을 가르치는 강사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당연하지, 나 E대 나온 여자야. 그 정돈 쏠 수 있지, 나 쏠 수 있어!”


   정 교수는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어요. 합격률이 좋으면 총장님께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계속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했어요. 거기에 더불어서 공부하다 보면 배가 많이 고플 테니 간식도 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요.


   철용이는 ‘강사’라는 말에 솔깃했어요. 순간 머리를 굴려봤어요. 저축한 돈과 앞으로 받을 강사비를 합치면 대학원 학비로 쓰기 충분했어요. 걱정은 어느새 사라졌어요. 빨리 집에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어요.


   교수님께 연신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왔어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그날 엄마는 영희네는 물론이고, 말숙이네 아줌마, 충만이네도 괜히 전화를 걸어서 ‘잘 있냐’고 안부를 물었대요


   “선배님, 진짜 잘 풀리네요.”

   “야, 그럼.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합격이야 무조건!”


   후배들은 철용이를 잘 따라와 주었고, 철용이도 강사비, 아니 후배들의 합격만 바라면서 열심히 수업을 했어요. 약속한 날이 다 되었어요. 마지막 수업이었지만, 철용이는 대충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 침을 팍팍 튀겨가며 가르쳐 주었어요.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시네요.”

   “아니, 무슨 대책이 있어야죠...”


   마지막 수업을 하고 며칠 뒤가 지나 입금 날짜가 되었어요. 철용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잔액 확인을 했어요. 숫자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았어요. 화가 난 철용이는 조교에게 찾아가서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조교는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몇 주가 더 지났어요. 학교에서 등록기간이라고 문자가 왔어요. 돈 내라는 말이에요. 하지만, 아직도 강사비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집에 갈 교통비마저 없어졌을 때, 철용이는 정 교수에게 연락을 했어요.


   “응, 철용이니? 잘 지내고?”

   “교수님, 저 집 갈 돈도 없어요.

    빌려주시면 강사비 나온 다음에 바로 드릴게요.”

   “그래? 근데 나도 돈이 없네... 미안하다.”


   그렇게 철용이는 세 시간을 걸어 집으로 가야 했어요. 버스비가 없었으니까요. 다리가 아파 잠깐 벤치에 앉았어요. 핸드폰을 열어요. 페이스북에 들어가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여요. 철용이가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 준 후배들이에요.


  ‘학사 장교 전원 합격 쾌거, 축하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총장님께 감사하고, 정 교수님께 감사하대요.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철용이 이름은 거기 없어요. ‘그래, 남이 몰라줘도 내가 뿌듯하면 된 거지 뭐!’ 생각하며 철용이는 일어났어요. 2주가 더 지나고서 강사비는 입금되었지만, 철용이가 다시 강사로 서는 일은 없었어요.


   철용이는 그렇게 정 교수님께 마지막 수업을 받았어요. 이게 무슨 수업이냐고요?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배웠으니 이것만으로 큰 배움이고 수업 아니겠어요? 그렇게 가장 중요한 수업을 들은 철용이는 졸업이라도 한 마냥 다시는 정 교수님과 만나지 않고 잘 살았답니다.


오늘의 동화, 끝!




현실에서 못 하는 불금, 브런치에서라도 즐겨 보렵니다.

금요일은 쉰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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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 음감님의 잔혹동화가 이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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