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떼고 엑셀 밟으면 이렇게 됩니다
쭈그러진 상상력
영희의 쉬는 시간은 5분이었어요. 선배 강사가 5분씩 네 타임이면 20분이나 남는 거라며 5분만 쉬랬어요. 어버버 신입은 선배 말을 하늘처럼 받들고 5분 쉬는 시간을 지켰어요.
<엄마랑 아가랑> 문화센터 수업 강사는 표면적으론 아이 수업이었지만 엄마들을 홀려야 했어요. 영희는 인간 ARS이 되어 항상 '솔'음을 유지했어요. 사력을 다해 폴짝거렸고 많이 웃었고 많이 상냥했지요. 입금은 영희 텐션을 한없이 올렸고 텐션은 성대결절과 위염 약값이 됐어요.
40분씩 아홉 타임을 했어요. 점심시간은 당연히 없었어요. 5분도 아까운 판에 점심을 어떻게 먹나요. 수업이 끝나고 개인 레슨을 하러 가면서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삼각김밥을 먹었어요. 물 마실 손이 없어서 켁켁대다가 어느 순간에는 핸들에서 손 떼고 물을 마시기도 했어요. 달리는 차에서요. 영희가 돌았나 봐요.
영희는 지가 되게 열심히 사는 줄 알았어요. 먹을 거 다 먹고 쉴 거 다 쉬면 어떻게 돈을 버냐! 식의 새마을운동스러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어요. 제대로 먹고 쉬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상상을 못 할 만큼 쭈그러져 있었거든요.
영희가 쉬는 시간을 5분으로 당기고, 점심을 굶은 건 쉼이 노동으로 환산되지 않아서예요. 누구도 쉼에 대한 비용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영희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어떤 세상에서는 노동 사이의 쉼도 노동으로 인정해요. 그 안에서는 밥도 천천히 먹어요. 짧은 쉬는 시간이 불안해서 참다가 장이 꼬이지도 않아요. 결국 쉬는 시간이 있다는 건 '사람은 로봇이 아니다'의 다른 표현이었어요.
'그게 억울하면 정규직 해야지'라고 엄근진 하는 사람이 있어요. 더 좋아지는 쪽으로 기준을 세우는 게 더 나은 사회잖아요? 기준점을 세우는 일을 말할 때 개인의 노오력을 강조하면 돌대가리 인증밖에 안 돼요. 머리가 나쁘면 닥침력이라도 있어주길요.
역사의 어느 순간에는 일곱 살 아이의 열 시간 노동도 당연한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그럼 지금 당연한 것도 먼 훗날 어느 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희는 센터에서 위염을 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새로운 상상을 해봤어요. '밤잠을 포기한 규칙적인 노동은 누구에게도 당연하지 않다' 이런 거요.
여러분이 상상하는 '지금은 당연하지만 먼 훗날 당연하지 않은 일'은 뭐가 있나요? 상상을 나누는 하루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오늘의 동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