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영희는 문화센터 강사였어요. 그 시절은 어린이집 정부 지원이 없었기에 엄마들이 영유아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오는 일이 많았거든요.
선배 강사가 있었어요. 영희는 6개월 차인데 그 선배는 15년 차였어요. 그 선생님 수업은 늘 마감이었어요.
어느 날, 영희와 밥을 먹던 그 강사는 이런 말을 했어요.
대기업에선 이 정도 경력이면 임원급이야
대기업 임원이라뇨. 스물몇 살 영희는 그저 멋있게만 들렸어요. 멋있게 들리면 그냥 들리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기어이 질문을 했어요.
와~ 진짜 멋있어요. 쌤은 임원급이니까 수업 수당도 높겠네요?
3초의 정적이 흘렀어요. 15년 차 선배는 갑자기 밥을 되게 열심히 먹어요. 돌솥 비빔밥에 코를 박고 고개를 들 생각을 안 해요. 잘하면 돌솥에 얼굴이 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영희는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또라이 소리를 했구나. 왜냐면 문화센터 전단지에 수업료가 항상 나오거든요. 15년 차 선생님은 수업 시수도 많고 늘 마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수업료가 높진 않았어요. 수업료는 센터와 6 대 4로 나눴어요. 네, 센터가 6을 먹어요. 당시 신세계 백화점 문화센터만 반띵 했어요. 사랑해요 신세계.
아, 강남 신세계 열 두 타임을 늘 마감시키는 선생님은 수업료가 오천 원 높긴 했어요. 반띵 하니까 인당 2천5백 원 더 많은 거네요. 그 선생님도 15년 차 강사였어요.
10-15년 차 강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강사료를 조금이라도 더 받는 사람은 신세계의 그 선생님 한 명뿐이었어요. 나머지는 6개월 차인 저랑 수당이 똑같았지요.
세상에는 선생님이 많아요. 학교에도, 학원에도, 하다못해 어디 가게에 들어가도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뀔 때가 있어요. 널리고 널린 게 선생님인데 경력에 따라 수당이 올라가는 선생님은 얼마 없어요. 그 많은 선생님들의 경력은 그냥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같아요. 쓰고 버리면 그만인.
그 시절의 영희는 지가 질문을 잘못해 놓고선 '시간당 수입이 올라야 진짜 임원 아닌가. 혼자 정신 승리하네'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절의 15년 차 강사보다 나이 많아진 영희는 비로소 생각해요. 수당이 안 올라가도 그만큼 버틴 건 대단한 거라고. 그 끈기는 인정해야 한다고. 비판을 할 거면 그만큼의 연차가 쌓인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고용 측에게 잘못이 있는 거라고.
너무나 완고한 판에 들어가면 그 판을 바꿀 생각보다 그 판 위에서 누구를 밟고 올라갈 생각이 들어요. 판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죠. 판을 만든 저 위에서는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아요. 판 위에서 지들끼리 싸우느라 자기들한테 시비를 안 걸거든요.
영희는 이제 문화센터 강사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다른 판에 있어요. 그간 먹은 밥이 아예 헛되진 않았는지 스물몇 살 때보다는 좀 순해졌어요. 적어도 분노해야 할 대상이 나와 같은 판에 있는 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싸움을 부추기는 판 자체의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이걸 인식하는 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럼 이걸 바꾸는 데까지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영희는 갑자기 오래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오래오래 살아서 바뀌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영희는 하염없이 오래오래 기다리며 사는 중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동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