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는 귀를 의심했어요. 교수님이 추천했다니요. 이건 무조건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앞뒤 생각할 거 없이 바로 한다고 했어요. 주간지 형식으로 나오는 <음악 킹왕짱 좋아 신문>에 올라가는 글이었어요.
그 뒤로 15년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영희에게 소재를 던졌어요. 영희가 해봤던 수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어요. 15년 경력에서 나오는 소재를 이제 겨우 반년 차를 지내는 강사가 모두 알 리 없잖아요. 그래도 영희는 지가 한 짓이 있어서 물어보지 못했어요. 다른 책을 찾아서 쓰기도 하고 상상해서 쓰기도 했어요.
원고를 쓰고 15년 차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았어요. 선생님은 “응? 이런 수업 아닌데? 그래도 뭐, 정해진 건 아니니까. 이렇게 써도 되겠네.”식으로 영희가 해보지 않은 수업도 그냥 넘어갔어요. 1차 검수를 끝내고 교수님한테 보냈어요. 교수님은 별 말이 없었어요.
몇 달이 지나자 소재 찾기부터 영희가 다 했어요. 원고 마감 날짜를 맞추려면 사흘 전까지는 소재를 받아야 하는데 15년 차 선생님이 안 줄 때도 있었거든요. 그걸 또 물어보기 민망한 영희는 알아서 했어요. 몇 번 그렇게 하자 15년 선생님은 “이제 영희 씨가 알아서 해”라고 했어요. 영희는 어쩐지 잘 쓴다고 인정받는 거 같아서 어깨가 으쓱했어요.
교수님께 메일을 꼬박꼬박 보냈어요. 메일 송고는 교수님 메일이어야 했거든요. <음악킹왕짱 좋아> 신문에는 조각같이 예쁜 교수님 프로필과 함께 영희의 기사가 올라갔어요. 잡지에 교수님 인터뷰가 나갈 때는 프로필에 <음악킹왕짱 신문> 칼럼 연재가 꼭 들어갔어요. 칼럼은 3년째였고 영희는 세 번째 고스트라이터였어요.
영희는 나중에 알았어요. 고작 경력 반년짜리가 알랑 방귀로 교수님 고스트라이터를 한다고 뒷담화 도마에 올라 난도질 당했다는 것을요. 교수님의 고스트라이터가 된다는 건 영광스럽다나요.
영광스러우려면 칼럼 연재는 영희 이름이 들어가고 교수님은 ‘감수’라는 이름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영희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곳이 없었어요. 3-4년 차 강사도 못한 일을 새파란 신입이 했다는 거 자체로 이미 죽일뇬이었으니까요.
칼럼을 시작하는 건 영희의 의지였지만 끝내는 건 영희 의지가 아니었어요. 교수님이 ‘이제 다른 강사로 바꾸자’라고 해야 그만둘 수 있더라고요? 영희는 그로부터 60개의 칼럼을 더 쓰고 그만뒀어요.
그동안 영희는 모르는 수업도 그 수업을 100번 정도 해 본 사람처럼 뻥으로 쓸 수 있는 구라 기술은 늘긴 했어요. 영희도 쓰면서 스스로 ‘나는 사기꾼인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강사의 경력이나 수입, 그 어떤 것에도 플러스 요인이 되진 않았어요.
15년 차 선생님에게 했던 띨띨한 질문이 종국에는 시스템 자체에 했던 질문인 것처럼 고스트라이터도 우리끼리 뒷담화파티를 할 일은 아니었어요. 감수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본인이 직접 쓰는 것처럼 이름을 올리는 그 자체가 잘못된 거잖아요. 왜 그걸 고스트라이터로 지목받았네 아니네로 칼을 겨눠야 했을까요.
교수님은 본인 이름으로 칼럼을 쓰고 있을까요. 15년 차 선생님은 중간전달만 해줬는데 그 선생님은 고스트 헤드헌터였을까요. 궁금해지지만 더 이상 엮이기 싫은 영희는 동화 소재를 받은 것으로만 감사하기로 하고 신경을 끕니다. 영희는 고스트라이터 대신 브런치 나부랭이 라이터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오늘의 동화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