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의 미(味)학

오늘의 음료_아이스 바닐라 라테

by 여느진

2020년 11월 1일, 오후 6시 19분


일어나니 빗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이런 날은 집에만 있고 싶다. 몸도 무거운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날은 꼭 밖에 나가야 한다.


라면 하나, 헤이즐넛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말에 걸맞은 음식을 하나씩 비우고 느릿느릿 집 밖을 나섰다. 어제 새로 알게 된 노래를 들으며, 우산을 들고, 후드 집업을 푹 눌러쓰고 걸어가는 길. 슬리퍼를 신은 맨발에 스치는 11월 첫날의 공기가 차갑고 눅눅했다.


짙은 안개 사이로 보이는 나무에 걸린 붉은빛과 노란빛이 좋아서, 나오기 전 가지고 있던 귀찮고 싫은 마음이 모두 녹아내렸다. 거세지 않고 잘게 내리는 빗물이 꼭 마음에 닿은 것처럼.


갖고 싶었던 신발을 구매하고,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옆동네에 있는 조금 큰 잡화점에 들렀다. 본래 목적은 바인더에 넣을 속지였지만, 역시나 오늘도 나는 테이블 매트와 곰돌이 모양 컵과 작은 빗자루&쓰레받기 세트 등의 예정 없는 충동구매를 했다. 곰돌이만 보면 소비하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어진다. 애정 어린 소비의 결과는 무거운 두 팔이었다.


짐은 많고, 날은 흐리고. 그럼에도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사실 전 직장 근처라 마음 한편에 작은 불편함이 있었지만, 노란빛을 흐림 사이로 발하는 은행나무 밑을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안갯속을 헤집고 지나가며 무진기행이 떠올랐고, 나는 지금 어떤 혼란과 아름다움을 지나가고 있는지 짧은 고찰도 했다.


집에 오자마자 한 일은 새로 산 신발 신어보기. 오랜 고민 끝에 산 것인 만큼 딱 맞았다. 들뜬 마음에 방방 거리다가 새로 산 곰돌이 컵의 스티커를 제거하고 씻은 후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탔다. 유당불내증이 있는 나 자신을 위한 유당 제거 우유를 넣고, 원액을 아낌없이 넣은. 곰돌이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노트북과 곰돌이 얼굴을 달고 있는 마우스가 놓인 책상 위에 곰돌이 컵을 올려놓으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밑에는 새로 산 테이블 매트를 깔려 있는. 완벽한 내 취향의 집합체.


지나치게 달달한, 그리고 지인의 말을 빌려 꼭 곰돌이가 배영하는 것 같은 바닐라 라테 한 잔에 담긴 귀여움이 맛있다. 이 안에 담긴 또 다른 재료들은 온 세상에 습기를 불어넣은 빗물과, 나의 귀찮음과, 그동안 염원이 담긴 신발, 예정에 없던 물건들, 조금의 불편함,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노랗고 붉은 계절의 색. 모두가 뭉쳐 내 하루가 되었고, 맛있는 귀여움이 되었다.


출근이 점점 다가오는 주말의 밤, 여전히 앞에 놓인 곰돌이에게 새로운 신발을 신고 나설 출근 길도 맛있었으면 좋겠다고 작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