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음료_헤이즐넛 아이스 아메리카노
2020년 9월 8일, 오후 1시 46분
비가 지나간 자리에 서늘한 바람이 남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미지근한 음료보단 얼음이 잔뜩 들어간 음료가 당연했는데, 이제 슬슬 따듯한 라테가 떠오른다.
얼음이 들어간 음료는 매 순간 변한다. 얼음이 물이 되어 저를 둘러싼 환경에 스며들면서 짙음이 옅음으로 바뀐다. 따듯한 음료는 그 온기가 큰 위안이 될 때가 많지만, 가끔 너무 짙은 색채가 오래도록 같은 모습으로 머물며 개운치 못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얼음은 음료에게 제 모습을 바꿀 기회를 주는 셈이다. 지나치면 밍밍해져 매력을 잃기도 하지만.
일찍 일어나고선 출근 시간을 착각해 허둥지둥 택시를 탔다. 조금 돌아가는 길에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한숨으로 구름을 만들어 푸름을 가려버렸다. 급박하게 도착해 한소리 들을까 기죽었는데, 원장님이 무슨 커피를 좋아하냐 물어오셨다.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라고 답하자 아이스로 사다 주셨다. 찬 바람이 스치는 바깥과 다르게 더운 공기가 머무는 공간에 에어컨도 잊지 않고 틀어주셨다. 반팔을 입은 팔뚝에 한기가 스몄지만 앞서 엉킨 회색 구름이 조금 풀린 기분이었다.
차마 늘 먹던 것처럼 연하게라고 말하지 못해 익숙한 달큰함이 무색하게도 아주 짙은 커피. 바쁘게 흘러간 시간에 얼음이 섞여 중간중간 잠깐 마실 때마다 그 진한 농도가 점점 옅어져 갔다. 퇴근 하기 직전, 얼음이 다 녹아 액체에 투명함이 깃들었을 때엔 늘 먹던 그 맛이었다.
퇴근길에 시시각각 변하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멋진 구름을 잔뜩 봤다. 버스가 바로 온 데다가 자리에 앉는 행운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귀에 생긴 염증이 거의 다 나아간다고 했다. 저녁으로 먹은 부대찌개가 맛있었다.
커피에 있던 얼음이 녹으면서 내 엉킨 하루의 시작을 흐물 하게 만들었다. 바람이 차갑지만, 그래도 아직은 얼음이 필요한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