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새우 삼겹살 토마토 파스타
2020년 11월 11일, 오후 12시 56분
일어나니 방 전등이 조금 이상했다. 지지직거리고, 깜빡거리다 이내 빛을 완전히 잃었다. 꿈자리도 그리 개운한 편은 아니었어서 괜히 찝찝했다. 부쩍 건조해진 공기가 살갗에 느껴지고,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며 일어난 평일의 중간지점.
출근길, 환승하는 버스 정류장 뒤에 있던 곰탕집이 고깃집으로 바뀐 걸 눈치챘다. 맥주집이었던 부분은 카페로 바뀌고 있었다. 내가 이 직장에 다닌 지 대략 일 년 반쯤 되었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만큼 내가 다니는 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아이에게서 빼빼로 하나를 받고 나서야 아, 오늘 빼빼로데이였지 하고 깨달았다. 이전에는 이런 기념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열심히 챙기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쌓일수록 연인이든, 친구든 이런 기념일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운 그런 날들. 시간이 바꾼 것이 새삼 많다.
출근하기 전에는 토마토 파스타를 해 먹었다. 베이컨 대신 삼겹살 한 줄을 썰어 넣고, 늘 냉동실에 구비되어있는 새우를 넣고, 통마늘 대신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만든. 만들면 만들수록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워진다. 면을 삶는 동안 재료를 볶으며 커피를 탈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생겼다.
저번처럼 면과 재료를 태우지도 않았고, 파스타에서 쓴 맛도 나지 않았다. 토마토소스가 담뿍 들어갔지만 짜지 않았고, 모든 재료가 잘 익었다. 냉동실을 훑어보다 충동적으로 넣은 삼겹살도 부드럽고 잘 어울렸다. 한마디로 맛있었다. 몇 번쯤 파스타를 시도한 끝에 나는 이제 나에게 맞는 파스타를 출근 전에 해 먹을 수 있게 됐다. 이것도 시간이 만든 변화라면 변화.
재료가 잔뜩 엉켜있는 파스타 사진을 보며 문득 정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면으로 이루어진 덤불 속 곳곳에 박혀있는 조각난 재료들. 숲에 떨어진 빗방울들처럼 곳곳에 매달려있는 토마토소스들. 내가 오늘 씹어 넘긴 건 변화의 정글일까.
느릿하게 비우는 사이 조금 건조해진 파스타처럼, 시간이 흐르며 점점 버석해지는 나. 항상 처음처럼 촉촉할 수는 없을까. 변화의 정글을 헤집다 보면 지금 밟고 있는 마른 잎 더미 말고 다른 것들도 나올까. 늪이나 호수나 좀 더 많은 습기를 지닌 그런 것들.
아주 늦은 수요일 밤, 또 커피를 타면서 아침에 파스타를 볶았던 프라이팬에 생채기가 남은 것을 본다. 아마 재료를 볶다가 나도 모르게 만들었을 상처. 잔뜩 메말라버린 내게 남은 상처는 없나, 손끝을 괜히 확인한다. 언제 베였는지 모를 엷은 흔적이 보인다. 알고 보니 따갑다. 어서 비가 내렸으면, 축축함에 생채기가 따끔거리다 이내 익숙해졌으면. 건기를 지나며 우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