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후식_초콜릿 케이크와 딸기
2020년 12월 15일, 오후 11시 34분
100일 전, 처음 글을 쓰며 나와 약속했다. 100일째 되는 날에는 케이크를 먹어야지.
생일에 케이크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들 입이 짧기도 하고, 다 못 먹을 걸 알아서 그렇다. 안에 담긴 마음을 남기는 것 같아서, 아쉬워서. 그래서 케이크 기프티콘을 받으면 대게 여러 가지 빵으로 바꿔먹고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래도 역시 무언가를 기념할 때는 케이크가 떠오른다.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에도 케이크를 먹을 테고, 작년과 재작년 크리스마스에도 그랬다.
어릴 때 케이크는 정말 특별한 음식이었다. 삼겹살이 특별한 날 먹는 '밥'이었다면, 케이크는 특별한 날에만 허락된 달콤한 폭신함이었다. 나이가 들고 돈을 벌며 커피와 아무렇지 않게 시켜먹는 간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 달콤함이 주는 위안과 무언가를 기념하는 듯한 느낌은 남아있다.
이번 100일을 포함해 일 년 중 200일이 넘는 날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썼다. 1시간 넘도록 고민하기도, 3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후루룩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남겨진 글들은 2020년의 나를 대표해주겠지. 덕분에 스스로 많은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매일 비슷한 듯 다른 날이구나 느꼈다. 같은 음식을 먹었어도 쓰인 글이 다르듯이.
오늘은 출근 전에 잔뜩 태운 치즈스틱을 먹었고, 어플 사용에 미숙하지만 운전은 기가 막히게 빨랐던 기사님의 택시를 탔고, 일하는 내내 발이 너무 시렸고, 더 두터운 롱 패딩을 입었고, 얇고 맛있는 삼겹살과 진한 사골 미역국을 저녁으로 먹었다. 곧 다시 일하겠지. 춥고, 평범하고, 그래도 괜찮은 하루였다.
평범한 오늘 중 기념할 만한 일은 카카오 프로젝트가 모두 끝났다는 것. 100이라는 숫자가 여러 개 생겼다는 것. 세 자리 수가 내 모든 것을 말해주지도, 내 모든 것을 보상해주지도 않지만 그래도 애틋하다.
엄마가 사 온 설향딸기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쌓아 올린다. 한 입 베어 물면 상큼한 달콤함이 쏟아진다. 내가 골라온 진한 초콜릿 케이크를 한 입 먹는다. 달콤함의 향연, 무언가를 기념하기 딱 좋은 맛이다. 옆에 있는 엄마도. 부스러져 식탁을 어지럽히는 빵 조각들은 모른 척 덮어둔다. 지금은 달콤함이 더 중요한 때다.
내일의 내가 무얼 먹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나쁜 하루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좋은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삶은 재밌다. 과거의 몹시 힘들었던 내가 삼켰던 쓴 맛이 오늘의 케이크의 달콤함에 덮이듯, 내일은 또 쓴 맛이 감돌 지도 모른다. 계속 단 맛만 먹고도 싶지만, 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금방 입이 물리겠지.
내일은 다시 1. 사실 이 뒤에는 수많은 100이 숨어있다. 프로젝트 말고도 시험 점수, 내가 느낀 만족감, 웃음, 슬픔 같은 여러 가지의 100이. 그러니 사실 이 1은 100보다 더 큰 숫자인 셈이다. 나는 이 1을 기념하려고 촛불을 켰다. 내일의 1을 위해, 그리고 그 뒤에 숨은 100을 위해. 더 큰 숫자가 될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