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느 한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늘의 한 끼_모둠전과 사골 미역국, 그리고 밤막걸리

by 여느진

2020년 12월 14일, 오후 9시 43분


웃풍이 도는 내 방, 두터운 이불을 끌어올려도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침대 위. 눈을 더 감지 못하고 끔뻑거렸다. 전기매트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밖에서도 마찬가지. 가만히 서있어도 몸이 덜덜. 밖에 무방비로 노출된 손 끝은 저릿저릿. 타코야끼와 과자가 담긴 봉투를 달랑이며 집에 왔다. 다시 월요일이 왔고, 춥고, 그리고 다시 저물고 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밤막걸리가 담긴 검은 봉투. 냉장고에는 모둠전이 있었다. 엄마가 사다둔 것들. 얼마 전에 왜 전집은 배달이 안될까? 막걸리엔 전이 딱인데 아쉬워 라고 엄마 앞에서 칭얼거렸던 것이 생각났다.


막걸리는 항상 마실 때는 좋은데, 다 마신 후가 문제다. 일어서는 순간 취기가 올라 막걸리를 마시고 저지른 실수만 해도 셀 수가 없다. 지금 스쳐 지나간 기억 몇 가지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그래도 마시는 순간은 정말 좋다. 맛있으니까. 그냥 맛 걸리도, 밤막걸리도, 사과막걸리도 전부 다 맛있다. 그리고 전이랑 함께하면 더 좋다.


맥주는 가볍고 소주는 무겁고 막걸리는 편안하다. 상 위에 놓인 막걸리와 모둠전, 그리고 사골 미역국. 각종 김치들. 익숙한 술자리가 떠오른다. 편안하게 앞머리를 위로 젖히고, 곰돌이가 박힌 수면잠옷을 입고, 최근에 빠진 음악 프로그램을 보며 전을 우적우적 씹고 밤 향이 솔솔 올라오는 구수한 막걸리를 한 입씩 마시고. 밥을 말아 넣은 진한 사골 미역국 위에 파김치도 올려먹고.


편안함 속에서 뜨끈하게 몸을 지지고 녹아내리는 기분이 좋다. 종일 따끔거리고 불편했던 언제 베인 건지 모를 상처와, 매일매일 자료 준비를 하느라 지끈거리는 머리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희미하다. 내일 일어나고 나면 다시 손바닥은 따끔거리고, 머리도 다시 지끈거리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 많은 것을 샀다. 전기매트도 구매했고, 인공눈물도, 소독약도, 간식들도. 오늘 엄마가 준비해준 이 편안함도 결국은 미래의 나를 위한 것. 지금 이 순간의 편안함은 곧 미래의 나를 위한 작은 처방. 약을 욱여넣고 내일을 살아낼 준비를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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