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느 한끼

나쁘지 않다

오늘의 한 끼_마늘종 통닭과 불닭 짬뽕 라면, 그리고 맥주

by 여느진

2020년 12월 13일, 오후 11시 33분


오전에 눈이 왔다는데 보지 못했다. 사실상 아침에 가까운 새벽에 잠들 때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내가 놓친 겨울의 소식이었을까. 중간중간 미끌거리는 도로 위 결정들과 부쩍 매서워진 칼바람만이 다녀간 겨울의 흔적을 짐작하게 했다. 소복하게 쌓인 하얀 둔덕을 보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운전하기 힘들겠네 같은 생각만 들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을 일해도, 일하는 요일이 주말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기분이 별로다. 특기인 자기 합리화로 주변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끌어와 이런 하루에 붙인다. 드러난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상쾌했다. 집에 있었다면 이불속 공기가 내가 들이쉰 하루에 전부였을 테지. 잠시나마 마음을 환기시켰다. 그마저도 얼어서 떨어져 내릴 것같이 아린 손가락 끝에 금방 끝났지만.


20여분이 남은 버스를 기다리며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매운 것도 먹고 싶었다. 마침 동생이 마라탕이 당기지 않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결국은 마늘종 통닭과 라면으로 결정됐지만. 마라탕 재료를 주문해볼까 고민했다. 동생이 내가 좋아하는 맥주와 라면을 사 오겠다 했고, 나는 마늘종 통닭을 시켰다.


마늘종 통닭은 옛날 통닭에 매콤한 마늘종 무침이 어우러진 통닭. 약간 바삭하게 눌은 껍질과 퍽퍽 과 촉촉을 오가는 살. 그 속에 질척하고 구수한 찹쌀밥. 후라이드 치킨의 바삭함 말고 이 퍼석한 구수함이 떠오를 때가 있다. 덜 자극적이고 수수하지만 화려한 맛이 나는 옛날 통닭.


불닭 짬뽕 라면은 동생이 마라탕을 대신해서 매운 라면 두 가지를 섞어서 끓인 것. 처음에는 그냥 짬뽕 라면 맛이 나다가 후반부에 갈수록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콤함이 올라왔다. 담백한 통닭과 잘 어울리는 화끈한 맛. 사실 걱정했는데 나쁘지 않다.


화려하고 화끈하고. 그렇지만 결국은 익숙한 맛. 살이 얼 것 같은 이 추위도 이제 곧 익숙해지겠지. 익숙함이란 그렇다. 구렸던 기분이 잠시 세상에 다녀간 눈처럼 녹았다. 그리고 다시 차오른다. 내일은 출근이니까. 그리고 또 익숙해지겠지.


먹을 때는 괜찮았는데, 살짝 아릿한 입술이 거슬린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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