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느 한끼

행복의 전주

오늘의 한 끼_족발과 불족발

by 여느진

2020년 12월 12일, 오후 9시 37분


주말인데 주말 같지 않았다. 아주 짧지만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전날 과다하게 마신 커피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카페인 줄여야지 생각하면서 또 커피를 타 마셨다. 내일 일어나서 또 후회하겠지만, 오늘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평소보다 늦은 출근.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일하러 가는 기분은 이상했다. 오랜만에 보는 노을의 순간은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어줬다. 평소에는 해가 다 저물고 퇴근하기 때문에 내가 보는 하늘은 아주 짙은 남색이라 붉은빛이 섞인 감청빛은 마음을 사르르 녹이기에 충분했다.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며 일터로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아주 짧은 2시간 남짓의 근무였지만 일터에 발을 디딘 순간 모든 의욕과 힘이 쭈욱 빠졌다. 이역시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 이런 나를 힘나게 만든 건 엄마의 메시지였다. '족발 어때' 이 네 글자에 광대가 위로 방싯 올라왔다.


집에 가며 자주 시키는 단골 족발집에 주문했다. 매콤한 것도 당겨서 불족과 그냥 족발 반반으로. 그리고 집 근처 밥집에서 나를 보고 가겠다며 기다리는 아빠의 얼굴도 오랜만에 봤다. 아주 짧았지만 포옹도 했다. 집에 도착하니 족발이 와있었다. 모든 게 만족스럽고 행복한 주말의 저녁이었다. 오늘의 슬픈 주말 근무는 이 모든 행복을 위한 전주였을까 생각했다. 원래 슬픔 뒤의 행복은 더 강하게 느껴지니까.


마요네즈에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불족발을 찍어먹었다. 엄마가 열심히 뭉쳐둔 참치 주먹밥도 먹고, 부드럽고 탱글한 족발도 먹었다. 그냥 족발은 본연의 양념이 좋아서 아무 소스도 찍어먹지 않았다. 혀가 얼얼했다가 고소함과 묘하게 올라오는 달달함으로 달래기를 몇 번. 시작이야 어땠든 결국은 행복으로 향하는 모든 길.


내일도 나는 일하러 가야 한다. 이번 주는 온전히 집에서 쉬는 날도 없고, 지치는 것이 사실. 그래도 오늘 같은 행복의 전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된다. 오늘 남은 족발들은 오늘 내가 남긴 행복들. 내일 내가 일하러 가기 전에 나누어줄 오늘의 행복들.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느끼는 그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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