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카레와 시금치 된장국
2020년 12월 11일, 오후 8시 59분
언제부터인가 축축한 머리로 집을 나서는 게 일상이 됐다. 머리가 짧을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머리카락의 길이를 늘리자 그 축축함이 더 두드러진다. 택시 안에서 약간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치고 가는 머리카락의 습기가 살결에 맞닿을 때마다 바쁘게 집을 나서는 일상을 실감한다.
출근 전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출근해서 커피를 사러가는 것도, 퇴근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니까 하루에 두세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일도 일상이 됐다. 카페인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던 몸이 카페인 없이는 굴러갈 수 없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떠오른다. 억지로 몸을 깨워야만 버틸 수 있을 만큼 학교도, 일도, 고민들도 많았다.
치과 예약을 미룬 덕분에 카레를 또 먹을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시금치 된장국까지. 된장국과 된장찌개는 같은 된장을 쓰는데 맛도, 느낌도 너무 다르다. 된장국은 좀 더 가벼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둘 다 똑같은 건 어떤 재료를 넣어도 제 색깔로 만들어버린다는 것. 카레가 주변의 색을 죽이고 본인을 살린다면, 된장은 주변과 어우러지면서 제 색을 내보인다.
시금치가 들어간 음식 중 나물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엄마가 끓여준 시금치 된장국. 달큼한 시금치의 맛과 구수한 된장 국물이 잘 어울린다. 어떤 밥이랑 먹어도 맛있고 기분 좋아진다. 카레를 가장 좋아하지만, 오늘은 카레보다 된장국이 더 좋았다.
바쁜 일상으로 섞여 드는 과정이 험난해서 그럴까, 된장국처럼 주변을 포용하는 위로가 필요했다. 주변을 포용하면서 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부러워서기도 했다. 사회에서 나는, 나를 죽이고 섞여야 하니까. 그러다 카페인 중독이 된 거고, 그러다 축축한 출근길 머리칼에 익숙해진 거니까.
이젠 사라진 내 색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만큼이나 내가 희미해진 걸까. 조금 생각이 많아지는, 커피를 마시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