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차돌박이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
2020년 12월 10일, 오후 11시 35분
퇴근하기 직전, 원장님의 일그러진 표정을 봤다. 그 순간 오늘 탔던 택시에서 기사님의 친절한 모습이 떠올랐다. 대조되는 두 모습이 참 닮아 보였다.
사업을 하는 아빠도, 직장에 다니는 엄마와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생도 모두 일한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끊기지 않도록 모두가 애쓴다. 살아남으려고. 버티려고.
엄마는 스트레스를 팍팍 주는 직장 상사의 언행을 견디고, 나는 스트레스를 팍팍 주는 상황들을 견딘다. 동생은 신발을 열심히 팔고, 아빠는 열심히 고객들에게 설명한다. 모두 열심히 견딘다.
새로운 원장님도, 그리고 친절했던 택시기사님도 열심히 견디는 중이었겠지. 그들의 상반된 표정은 결국 같은 이유에서 나왔을 테지. 나도 그들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절함을 얼굴에 쓰고 속으로는 잔뜩 일그러진 감정을 밀어 넣으니까. 역시 사는 건 참 쉽지 않구나.
뒷정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라탕이 먹고 싶어 졌다. 배달 어플을 뒤적였지만 모두 이미 마감. 이렇게 삶의 어려움을 깨닫는 순간에는 화끈한 매운맛이 제격인데... 아쉬워 고민하다가 떡볶이를 시켰다. 차돌박이가 들어간 것으로, 찹쌀 순대와 모둠 튀김도 같이.
쫀득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떡의 질감에서 녹록지 않은 하루의 피로가 떠오른다. 원래 나는 떡볶이의 떡보다 어묵을 더 좋아하는데, 오늘은 쫄깃한 떡이 더 입에 잘 들어간다. 역시 사는 건 무엇하나 일정하지 않구나. 칼칼한 떡볶이 양념이 입 안에 맴돈다. 조금 눅눅해진 튀김옷을 이 칼칼함에 담갔다 뺀다. 지난번에 먹고 남은 치킨도 데워온다. 김말이 튀김 속 당면이 특이하게 양념이 되어있다. 역시 칼칼하다. 쫀쫀한 찹쌀 순대도 입에 밀어 넣는다. 다시 떡볶이를 먹어 고소한 맛을 지운다. 역시 이런 날은 매운맛이다.
떡볶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고등학생 때 하굣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친구와 나눠먹던 일. 학업, 진로, 친구, 집 등 어린 날의 나는 당시에 결코 해결되지 않을 고민들을 어깨에 지고 있었다. 단골이 되어 우리를 기억하고 튀김이나 꼬치를 서비스로 내어주곤 하던 아주머니의 정과 함께 떡볶이를 삼키며 지고 있는 짐을 잠시 내려놓는 게 큰 힘이 됐었다. 지금의 내가 맥주를 찾고, 매운맛을 찾는 것과 비슷하게.
내 앞에 있는 떡볶이는 그때보다 더 화려해졌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계속 열심히 견디는 중. 힘에 부치는 인내는 매운맛을 위한 이유가 될 뿐이다. 아무리 무언가가 나를 눌러도, 친절함을 얼굴에 계속 써야 해도, 일그러진 표정이 때로 튀어나와도, 결국 나는 견뎌내겠지.
지금은 그저 열심히 떡볶이 먹기. 그리고 열심히 하루를 마무리하기.